남산동

남산(南山)마을

남산동(南山洞)

당머리나루(당두진)

당머리에 있는 나루터 돌산도로 건너 다녔음.

남산(南山)(예바구 · 예암산)

남산 남쪽에 있는산

당머리(당두 · 당목 · 당황포)

남산 남쪽에 있는개. 영당이 있으며 당머리 마을에는 이순신 장군의 제당(영당)이 있어 당머리라고 칭하고 제당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셔놓고 춘·추로 제를 올리고 여수읍민들이 놀이터로 사용하고 출어시 그 제당이나 제당 앞바다에서 제를 모시고 출어를 하여왔고 그 이후 일제때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일본인들이 가지고 간 후로는 제를 모시고 않고 민간인이 살고 있었으나 출어시에는 그 제당 앞바다에서 꼭 고사를 모시고 출어를 하였다. 그러던 중 어항단지 조성으로 인하여 제당을 철거하고 어항 단지를 건립했던 바 그 이후로는 수산업이 부진하자 어민들의 이야기가 제당의 제거로 인하여 수산업이 부진하다고 하여 여수시 당국에 건의하여 제당을 다시 1981년에 복건하고 지금은 제당에서 매년 5월에 풍어제를 모시고 있다.

언내교(堰內橋) 통학교(通學橋)

언내교 북쪽에 있는 다리로 전신전화국과 남산동을 잇는 송천을 건너는 다리를 말함.

영당(影堂)

당머리에 있는 영당으로 원래는 최영(崔營)장군의 영정을 모시었는데 임진왜란때의 이순신, 정운(鄭運), 이대원(李大源)의 영정을 모시고 매년 봄·가을에 제를 드렸으며 또 바다에 나갈때는 반드시 쌀 두말씩을 바치고 고사를 지냈는데 일제때 최영, 정운의 영정은 불태워 없애고 이대원의 영정은 어떤 사람이 가져가고 충무공의 영정은 한사람이 모시고 있다가 6.25사변때 없어지고 현재 당집만 남아있다. 지금까지 제당은 당골(점장이)이 지키고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의 이마 위에다 금을 붙여 놓았는데 하루는 도둑이 들어와서 화상에 금을 떼어 가지고 도망갔는데도 저녁내내 당집 주위만 맴돌다가 결국 금이 마루위에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봉산동

구봉로(九鳳路)

교동에서 봉서동을 거쳐 국동과 봉양사이의 구봉산 기슭에 난 길

봉산언(鳳出堰)

봉산 저수지로 봉서동 남쪽에 있는 못

사직단터(社稷壇-)

구봉산 동쪽 기슭에 있는 사직단터

절샘

한산사 동쪽 바위틈에 있는 약물샘

황득중묘(黃得中墓)

봉서동 서쪽으로 구봉산 기슭에 있는 선무공신 황득중의 무덤임.

한산사(寒山寺)

구봉산 동쪽 중틱에 있는 절로 고려 명종 24년(1194)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창건하였다 하며 「한산사의 저녁 종소리(寒山暮鍾)」는 여수 팔경의 하나로 전하여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