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문동
덕지터(德池ㅡ)
관문동에 있는 못터로 지금의 여수문화원이 있는 곳으로서 영조 갑오년(50년 1774년)때에 성중(域中)에서 불의의 화재에 대비하기 위하여 시설한 지금의 소방전과 같은 역할을 했던 곳으로 추정되는 큰 연못이었다.
동문동(東門洞)마을
관문동(館門洞)
동문외(東門外)마을
관문동(館門洞)
동문밖마을
관문동(館門洞)
동문터(東門ㅡ)(충인문터)
관문동과 동산동(東山洞)사이에 있는 성문(城門)터
동정시장(東町市場)동시장(東市場)
관문동에 있는 상설시장으로 1940년대에 개장됨.
아동마을
관문동(館門洞)
토산(土山)
흙산 아동 동쪽에 있는 작은산
무정(茂亭)
흙산 서남쪽 언덕에 있는 정자로 옛날에는 무정이 있었다는데 6.25사변때 없어지고 1959년 봄에 마을 유지들이 다시 세워서 지금은 노인당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충혼비(忠魂碑)
아동남쪽으로 여수경찰서 정문 동쪽에 있는 비석을 말하며 여순 사건때 희생된 영혼을 기념하는 내용
종화동
종화동은 자산(紫山), 척산(尺山)을 끼고 형성된 갯마을로 왼쪽으로 오동도, 앞쪽으로 동산과 마주하고 있으며 종고산 아래에 있는 포구라 하여 종포라 불려졌고, 이후 일제시대 때 일본인들이 해가 제일 먼저 비치는 곳이라 하여 일출정이라 불렸다. 해방 후에는 삼성냉동을 중심으로 윗종포(종포동), 아랫종포(평화동)으로 나눠졌다가 1953년 행정구역 변경에 따라 종화동으로 개칭.
동산동
석성, 수박등, 소복동(마을)
동산동(東山洞)
보효대터(報效臺ㅡ)
종고산위에 있는 터로 이충무공이 한산대첩에서 승전고를 울렸더니 본영뒤 중고산에서 종소리 또는 북소리 같은 큰 소리가 사흘동안 났으므로 충무공이 산이름을 종고산이라 명명하고 이 보효대를 세윘다 함.
기우대터(祈雨臺ㅡ)
보효대터 밑에 있는 기우대의 터.흔적이 완연히 남아 있음.
여수상수도수원지(麗水上水道水源池)
보광사 앞에 있는 여수시의 수원지
종명재터(鍾鳴齋ㅡ)
종고산 기슭에 있는 서당터와 종고산샘이 있었는데 현재 우물터만 있음.
보광사(普光寺)
종고산 남쪽 중턱에 있는 절. 1940년에 세웠고 전몰 군경의 영현을 모시고 있음.
백련사(白蓮寺)
종고산 동북쪽에 있는 절로 1935년에 세워졌다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