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들(마을)
미평남쪽에 있는 들과 마을.
죽림 죽전(마을)
죽림(竹林)마을은 큰밑들 동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부터 죽전(竹田), 또는 대밭골(竹田)이라 부르고 있다.
유래
조선조에 마을뒷산이 호랑이 형으로 형성되어 있어 마을의 재앙을 막기 위해 대나무밭(竹林)을 조성하여 재앙을 막았으며 지금은 대부분 고사하고 부분적으로 남아있다. 지금의 미평수원지 안에 복성동(福星洞)이라는 마을이 있었으나 일제시대(1920년)에 수원지 축조로 지금의 죽림부락으로 이주하였다.
입향
1810년경에 水原全氏 일가가 마을 형성후 咸安趙氏등이 입주하였다.
특징
매년음력 7월 7일이면 마을 공동우물 및 가정의 우물을 퍼내고 마을회관에 모여서 진세(어린애가 7세가 되면 아이가 아니라는 행사인 속칭꼬리자르기)를 지내며 농악놀이가 행해지고 있다.
문화유적
1910년부터 1950년까지 죽림서재(竹林書齋)라는 서당이 있으며 미평 일대의 한학의 요람이었으며, 고인돌로 보이는 거석들이 밭에 이곳저곳 흩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및 군데만이 남아있다.
앙지(陽地)마을
양지(陽地)마을은 마을구조가 남향으로 바라보고 있으며 일조시간이 길며 언제나 햇볕이 잘드는 마을이라 하여 양지라고 한다. 죽림마을에서 양지마을로 넘어오는 길을 동녘길, 마을앞 길을 진터거리라고 칭했으며 중산일대를 빛골이라고 불렀다 한다.
입향
조선조 1700년대에 한양에서 벼슬하던 星州裵氏가 낙향하여 마을을 이루였으며 1800년대 全州李氏 玄風郭氏 異光金氏등이 입주하였고 1890년경에 둔덕동 용수마을에서 살던 羅州林氏가 입주하였다.
특징
1930년경에 심한 한발이 닥쳐 호암산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미평수원지에서 물을 길어다 마을 공동우물에 부으니 다음부터는 어떤 한발에도물이 마르지 않은 우물이 있으며 7월 7석에는 우물물을 퍼내고 고사를 지냈으나 수도공급후 고사도 지내지 않고 있으며 구정 추석때는 농악놀이를 하고있다.
문화유적
1915철에 건립한 靈光金氏 제각이 있고 1920년대에 건립한 靈光金公之妻仁同張氏 열녀비가 있으며 1940년대에 문중에서 건립한 四宣亭이 있다.1974년 주민부담및 정부지원으로 마을회관을 건립했다.
미평교(美坪橋)
미평역 남쪽에 있는 다리
신죽(新竹)마을
신죽(新竹)마을은 죽림 북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을 말하고 있다.
유래
1810년 조선조에는 100여호의 큰동네로 대동(大洞)이라 칭하였으며 지금의 신죽이라는 부락명은 1910년경부터 마을 대밭에 큰 대는 없고 새로운 대만이 무성하여 신대밭골이라 부르다가 지금의 신죽이라 칭하게 되었다 한다.
입향
1700년대에 맨처음 全州李氏가 입주하였으며 1800년대에는 천석군 부자가 되어 소작농 및 일반농가 100호를 이루었으며, 1900년대 全州李氏 가정내부의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망하면서 100여호의 부락이 자연이주하여 지금의 14의 소부락으로 된다.
위치
미평동 가장 북쪽이며 둔덕동과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연혁
- 전주 이씨중심의 촌락형성으로 한때 70호정도로 커짐.
- 새마을사업 지붕개량시 광무17년이라고 새겨진 모리대 발견.
- 1948. 8.15 시승격에 따라 미평리 신죽마을로 명명.
풍수설, 교육, 인물, 유적
"신대밭골"에 "서"씨성씨가 들어오면 마을이 망한다고 하여 "서"씨의 이주를 제한하였으나 난리와 더불어 "서"씨성이 들어옴으로써 동네가 망하였다고 한다.
미평역(美坪驛)
평지 서쪽에 있는 기차 정거장
소정(小亭)마을
위치
미평동 남쪽에 도로변을 따라 위치
연혁
- 70~80년전 여수시 관문인 소도로를 따라 마을 형성
- 1949. 8. 15 시승격에 따라 미평리 소정부락으로 명명
- 1967. 1. 1 동승격에 따라 미평동 소정마을로 명명
마을구분현황
철도를 기준으로 양지, 평지로 구분
자연환경
남향의 마을에 위치한다.
일반현황
169세대 646명 거주(남:324명,여:322명),상업중심의 상가지역
마을유래
도로변을 따라 장사목적의 작은 마을이 정자와 함께 있기에 "소정"이라고 명명.
풍수설, 교육, 인물, 유적
연대미상의 열녀비(경술년)와 효자비(무오년)가 있음.
미륵암
丁永旼氏께서 입향하면서 선몽으로 세웠음.(당시는 국도변이였음)
신죽저수지(新竹貯水地)
서쪽 서남쪽에 있는 저수지
사의정(四宜亭)(竹林寺)
저당산 중턱에 있는 정자로 정영민(丁永旻)이 13대 독자로 내려오다가 4형제의 우애를 두텁게 하기위해 “사의정”이라하였다.
성도암(誠道庵)
미평 수원지 동쪽, 호암산 북쪽 기슭에 있는 절
제당산(저당산)
죽림과 신죽사이에 있는 산. 산위에 미륵불이 있음.
큰밑들
밑들 가장 큰 마을
평지(平地)마을
평지(平地)마을은 미평동네에서 가장 평평한 곳이라고 하여 「평지」로 부르고 있으며 미평동 정중에 위치하여 80년전 소나무와 바위로 이루어진 작은평지에 촌락이 형성되었으나 복정마을이 수원지에 잠긴 후 많은 사람들이 평지로 이주함으로서 동리가 확장되어 1967년 동승격에 따라 미평동 평지마을로 명명되었다.
마을구분현황
마을도로를 기준으로 양지, 죽림과 구분하였고 철도를 기준으로 소정과 구분한다.
특징
현 5통지역은 "반"씨와 "택"씨 2가구가 처음으로 살았다고 하여 현재도 "반택이"이라고 한다. 신석기 내지 청동기 시대로 추정되며 고인돌 유적이 있다.
평지교(平地橋)
평지 서쪽에 있는 다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