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묘도는 총면적이 9.54㎢의 작은 섬이며 이섬의 형태가 고양이 모양으로 이루어져 (고양이)묘 섬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이섬은 5개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이섬에 주민 들이 들어와 살기는 기원전부터인것으로 추정되나 완전하게 마을을 형성한 것은 약 오육백년전쯤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근에 있는 영취산 상봉에서 내려다 보면 고양이와 독수리가 서로 먹이를 넘보고 있는 것 같다.

서치도(일명 쥐섬)가 있고 또한 우선도라는 섬이 있는 데 원래는 이섬의 이름이 누른밥 섬이라고 불렀다 한다. 서치도에서 묘도를 바라보면 마치 고양이기 쥐를 먹기위하여 입을 벌리고 있는 것 같은 형국에서 옛날부터 전하여 오는 전설은 쥐의 몸보다 열배나 더 큰 누릉지를 가진 섬이 고양이 입앞에 있다고 하여 우신도라 하였다 하며 또한 묘도 는 고양이가 쥐와 누릉지를 놓고 어느것부터 먹느냐 하는 모습이여서 이곳에 큰 인물은 나지 않터라도 의식주만은 걱정이 없을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구전에 의하면 특이하게도 이섬에서 누구나 살아가도 의식주만은 걱정없이 살수 있지만 이상하게도 서씨성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섬에서 살 수 없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서씨 성은 한세대도 살지 않고 있다. 이 마을로 시집온 서씨 아낙내는 살아가고 있으나 남자가 서씨성을 가진사람은 우연하게도 패가망신하여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아니면 시름시름 아파서 죽거나 아니면 갑자기 사망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이섬의 꼬리(즉 고양이 꼬리는 남해군쪽에 있음)에는 유두라는 지명이 선조들로부터 불리웠다. 그래서 일제시대에 일본인들이 석유가 나올 것이라며 이곳에서 답사작업을 시도해보았지만 모두가 허사였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지금 이곳에는 호남정유의 선적 유류부다가 설치되어 호남정유 대형 유조선이 항상 정 박하고 있어 선조들이 선견지명은 수천년후의 우리나라 발전과 개발에 대한 예측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묘도는 임진왜란 전적지로서 유명하게 전해지고 있다. 묘도 온동에서 광양군 골약 면 장길포가 건너다 보인다. 이곳 도독부락과 온동부락 사이에 정유재란때 해군이 주둔했던 명나라 진인도독이 일본 왜군을 치기위해 성을 쌍아 지키던 곳이다. 진 인도독이 주둔했다고 해서 도독마을과 도독성이 있다. 이곳에서 이충무공과 진인 은 진을치고 왜군의 소서행장과 그 부하들이 퇴진을 차단하여 왜군들을 모두 물리 쳤으며 이로 인해 이충무공과 진인도독은 반의가 더욱더 두터워졌고 그후 충무공 이 전사하자 진인도독은 매우 슬퍼 하였다 전해진다. 이곳 산 정상에 높이 2미터, 길이 2키로미터에 달하는 도독성이 남아 있다. 성내에는 축구공처럼 둥글게 깍은 석탄이 뒹굴고 있다. 또한 성 주위에는 석축과 포대를 설치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 이곳 지형은 경사도 70도에 달하고 성내 면적의 70%가 돌밭으로 되어 있어 유사 시는 석전에도 대비한 듯 하며 그리고 이 성에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전초기지로 이용했던 봉화대가 남아 있으며 현재도 산정에 올라가면 돌로 쌓아둔 봉화터가 남 아 있으며 구전에 의하면 왜군이 침입시 한양까지 이 봉화산을 통하여 즉시 연락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