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삼산면은 언제부터 여러 가정이 모여 내부적으로 집단을 이루는 마을이 생겨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손죽도의 조개 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 역사는 결코 일천하지 않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옛 삼산면 사람들은 어업이 주였으나, 농사를 지을 만한, 논 1.8정보, 밭 230여 정보를 개척해서 얼마간 농사도 지으며 섬 생활을 해 왔다. 그래서 마을을 앉힐 때는 바람이나 파도를 피할 수 있으면서도 바다에 나가기 용이한 곳이나, 농사하기에도 편리한 곳을 택하여 마을을 앉혔다. 풍수지리를 보아 마을을 택했던 육지와는 달리, 생활의 안정과 번영 그리고 편리를 가져다주는 곳을 마을로 우선 택했던 것이다.

삼산면은 어촌이 거의 대부분이다. 그래서 연해 부락(沿海部落)을 형성하고 있다. 현재 주민이 살고 있는 마을의 이름은, 아래 표와 같이, 방위와 위치, 지세, 인물, 특산물, 크기 등으로 나누어 그 유래를 살필 수 있는데, 이러한 지명들은 애초에는 순 우리말이었던 것이 한자를 붙이면서 전혀 엉뚱하게 그 의미가 바뀐 것도 있다. 마을들의 이름으로써 어느 정도는 부락의 성격과 얽힌 이야기 등을 짐작할 수 있다.

삼산면은, 초도와 손죽리에 각각 출장소가 있으며, 거문리·덕촌리·서도리·동도리·초도리·손죽리 등 6개의 법정리가 있고, 이를 거문·덕촌·서도·변촌·유촌·죽촌·대동·의성·진막·손죽 등 10개 마을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자연 부락으로는 거문·덕촌·서도·변촌·유촌·죽촌·대동·예미·녹항·상도·의성·경촌·진막·정강·손죽·소거문·평도·광도 등 18개이다. 마을을 크기에 따라 100호 이상이 되는 대촌(大村)은 거문·덕촌·소도·대동·손죽 등 4개 부락이며, 50호 이상 100호 미만의 중촌(中村)은 유촌·죽촌·의성·진막 4개 부락, 50호 미만의 소촌(小村)은 변촌 등이다.

마을에도 조직과 제도가 있다. 마을을 총괄하여 관할하는 이장이 있고, 이밖에 마을의 원로가 되는 지도자가 있다. 또, 어촌계·노인회·청년회·부녀회 등도 두고 있다. 이장은 마을의 공식적인 대표로서 부락의 일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공동 재산을 관리하며, 관의 행정 및 지시 사항을 마을민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자기의 일을 제쳐두고 마을의 갖가지 행사-洞祭, 祈雨祭, 賦役-를 주도하고, 농사 지도, 곡식의 수매, 관혼상제 등 제반 마을일을 관장해야 한다. 이장은 매년 정월 보름께 부락 총회에서 선출하며, 면장으로부터 임명을 받고 보수도 매월 일정액을 면으로부터 받는다. 옛날에는 마을에서 봄 가을로 농산물을 각출하여 주기도 했다.

마을의 의결 기관은 마을 총회이며, 근래에는 반상회가 이를 대신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4h 클럽이 있었고, 1970년대는 새마을 지도자를 두어, 농로 확장, 지붕 개량, 농수산물 증산, 취락 개선 등을 주도했다. 손죽도 에서는 정조회(正朝會)가 있었는데, 정월 초순에 마을 사람들이 1세대에 1명씩으로 구성된 마을회이다.

삼산마을이름유래 정보를 제공하는 표로 구분, 마을이름과 유래 항목으로 구성된 표
구분 마을이름과 유래
방위 서도-서쪽섬, 동도-동쪽섬, 변촌-갓지미
지세 덕촌-언덕, 예미-거북, 진막-요세, 소거문-톱날, 평도-평평하다, 광도-너프리
특산물,인물,크기 유촌-유자, 죽촌-대나무, 거문-金劉(1818~1884), 손죽-이대원(1566~1587)장군, 대동-큰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