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명유래(地名由來)

한재(대치)마을

텃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구봉산 북쪽편 밑이다. 한재라는 어원은 구봉산과 장군산의 고개로 한재 또는 영곡재라고도 불리우며,한재, 대치마을과 한국화약공장쪽 신월동으로 가는 고개까지를 한재로 불리워 왔다.그리고 구 여서동사무소가 있었던 큰마을부터 연결하여 산발적으로 고개에 이르기까지 마을이 산재되어 있었고 고개에서 보면 가막만이 시원히 보이고 신월동으로 잇는 큰 농토가 있었으며 일제시대에 신월동에 비행장이 있었던 마을에서 이주한 곽씨, 한씨, 박씨 등이 많이 살면서 큰 부락을 형성하고 있었다 한다.

텃골(基洞)마을

기동(基洞)부락은 원래 우리말인 텃골이라 불렀고 한자로는 기동(基洞)이라고 부르며, 물이 좋고 당산이 좋아 아늑한 마을 분위기를 가졌으며, 원래 기동부락은 한재터널 사이에 (현 경남아파트) 위치하였으나 북풍이 심하고 농토가 아랫마을 쪽에 있어서 모두 이주한것 같다고 하며 지금도 그곳은 동백나무와 담돌, 옹기그릇등으로 보아 천년에서 이천년전의 상당한 큰 마을로 추측하고 있다. 기동(基洞)부락은 현재 여수시청이 자리하고 미평지구와 여천, 웅천지구가 개발되면 이름 그대로 기동(基洞)부락은 여수반도 센추럴빌리지로서 여수반도의 중심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丁 ·白 ·崔氏등이 많이 살았다.

한재(대치)마을

여서동에 있는 마을. 현재 시청과 기동당산과 구가옥이 있다. 여수반도 센타가 될 것을 미리 옛선인들이 알고 명명했다.

들고개(석현)마을

돌고개 밑에 있는 마을

군터(郡- )

군터는 당산과 보리타작을 했던 보리마당터 아래를 군터라 했으며 헌재의 시청이 자리잡을때 시장이 군터라는 말을 듣고 무릎을 쳤다한다. 왜 군터로 불리워졌는지 아무도 모르나 여수군이 설치될때 여수 군청터로 거론된 바 있다하며 터를 스님이 잡았다는 설도 있다 한다. 하여튼 그 옛날의 군터가 현재의 시청터가 되었다는 것을 신비하게 생각하고 있다.

비렁끝

동네 입구 큰 비렁(큰 암반)이 크게 자리잡고 있어 큰길을 내는데 어려움이 있어 3,40년전만 하여도 우마차가 다니는 종착역이었다.

쌍거리(삼거리)

현재 시청 아래의 MBC입구 오림동, 문수동, 한재터널로 가는 삼거리(현재 삼거리와 같음) 그곳은 아담하게 논이 많았으며 삼거리가 교차되는 길목이 있고 텃골의 입구이기도 했다. 현재 여문초교가 있는 아래는 구랭이(구릉지)라 부르고 항상 논에 물이 좋고 논농사가 잘되었으며 여문초교 위쪽 현재의 경남아파트쪽은 섶바지기라 하여 논에 가뭄이 많아 물이 귀하여 물퍼대기가 일쑤였다 한다.

화약고

현재 경남아파트와 문수동 천주교 사이에 왜정시대때 화약을 보관했던 큰 창고가 있었다 한다. 산속에 물이 스미지 않는 곳에 땅속깊이 흙을 파고 축대를 쌓아 그안에 배수가 잘되게 하고 콘크리트로 건물을 축조하고 기와를 덮고 통풍이 잘되게 하였으며 숲으로 위장되었다. 30년 전만 해도 건물이 잘 보존되어 있었고 현재는 깊이 파인 집터와 높이 쌓인 담돌만이 보존되어 있다.

개대가리 털

기동부락 앞산인 구봉산 기슭의 끝부분과 접한 부분이 풍수지리상의 개머리털이었다 한다. 이곳에 묘를 쓴 큰샘골 임()씨는 여수 최고 부자가 되고서 그후 그 묘에다 묘비와 상석을 정화한 뒤로 폐가가 되었다 한다. 그 이유는 개머리털에 무거운 돌을 올려서 개가 힘을 이기지 못해 가세가 망하였다 한다.

풍수설

지금부터 100년전에 구봉산 상봉에 칼바위(약10미터)가 있었으나 그 칼바위가 북쪽을 바라보고 있어 그상이 여수 신월리에서 바라보면 스님이 바랑을 메고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형상이 나타나 임산부가 그상을 바라보면 낙태를 하고 또 이곳을 지나가는 나귀들이 이 상을 보면 소리내어 울고 하였다 한다. 그후 신월리 사람들이 피해가 있다하여 석공을 동원하여 그 칼바위를 떨어 내었으나 여서동 주민들이 철거를 막지 못하였다 한다. (이유는 세력이 신월리보다 약했다. ) 그 당시 떨어진 바위덩어리가 큰 텃골 주택부근까지 굴러왔고 중턱에도 그 바위 덩어리가 아직도 있는 걸로 보아 구봉산 정면이 신월리가 아니고 여서동이다. 구봉산맥은(칼바위가 있을때) 바위밑에 샘이 있었으나 칼바위를 철거하면서 샘이 없어 졌다고 한다. 그 당시 그 물에서 봉 9마리가 물을 먹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장군바위 - 일명 굴등바위라 함.

굴등에 큰바위가 있어 굴등바위라 했으며 장군이 공부를 했다는 의자와 책상이 돌로 되고 어니스트 바위같이 큰 얼굴 형상을 하여 큰 인물이 기동부락에 날 것이라고 하는 옛 선인들의 이야기도 있다.굴은 약 150m.안쪽으로는 좁아 들어갈 수 없으나 종포까지 뚤려 있다 하기도 하였다. 현재 한영고등학교 바로 위에 위치한다.

마당바위

마당처럼 넓다하여 마당바위라 한다. 장군산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위치한다.

덕석바위

덕석처럼 넓고 놀기 좋다고 하여 덕석바위라 한다. 현재 한영고등학교 뒷편 골짜기에 위치하고 덕석바위 아래 큰 우물이 있었다. 이곳의 골짜기를 좆바꿀이라 하는데 음양의 이치를 알아 붙인 이름인 것 같다.

흔들바위

옛날 UN 공동묘지 위쪽. 장군사 위쪽으로 5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다. 돌고개인 장군 동북쪽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