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곳곳에는 충무공 이순신이 살아있다.
장군 이순신, 효자 이순신, 지략가 이순신, 기술자 이순신, 아저씨 이순신, 서너걸음마다 이순신, 여수를 감히 이순신의 원조라고 말 할 수 있는 이유,
그것은 이순신 일생중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운 8년 (1591.2. ~ 1598.11.19.)을 여수에서 머물렀기 때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1년 이순신은 전라좌수사로 이곳 여수에 부임하여 왜적을 침입에 대비하였다. 전라좌수영의 본영이었던 여수는 거북선을 처음으로 출정시킨 곳인데, 1593년(선조26년)8월부터 1601년(선조34년)3월까지 삼도수군통제영의 본영이기도 하였다. 이순신의 수군이 옥포, 함포, 당항포, 율포, 노량, 명량, 한산도 등에서 거둔 승리는 조선이 왜적에게 7년 전쟁에서 승리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여수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발자취가 곳곳에 문화유적으로 남아있다.
진남관 · 고소대
진남관은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삼았던 진해루가 있던 자리로, 임진왜란이 끝난 다음 해인 1599년, 충무공 이순신 후임 통제사 겸 전라좌수사 이시언이 정유재란 때 불타버린 진해루 터에 75칸의 대규모 객사를 세우고, 남쪽의 왜구를 진압하여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鎭南館' 이라고 이름 지었다.
진남관은 현재 복원공사(~2022년 5월 예정)중으로 관람이 불가능합니다.
고소대는 1947년에 세워진 정면 3칸, 측면 3칸의 비각 안에는 통제이공수군대첩비, 타루비(墮淚碑), 동령소갈비(東嶺小喝碑)가 나란히 세워져 있다.
비각이 세워진 곳이 고소대가 있던 곳으로 남쪽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이 수군훈련을 독려하고, 임진왜란 발발 후 작전 계획을 세우는 한편 군령을 내린 곳이다.
고소대 안의 통제이공수군대첩비 오른쪽에 있는 타루비는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지 6년후인 1603년, 부하들이 장군의 덕을 추모하여 세운 것이다.
충민사
충무공 이순신장군을 모신 사당으로 이곳에 가면 임진왜란 당시 충무공의 지혜와 용맹함을 느낄 수 있다. 충무공의 영정에서는 문무겸비의 명장의 기운이 전해지고, 비문의 글귀에서 임란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를 그려볼 수 있다. 이곳은 1601년(선조34년) 이항복이 왕명을 받아 임진왜란이 끝난 후 통제사 이시언에게 명하여 건립되었다.
충민사를 건립한 후 우부승지였던 김상용이 선조에게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여,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그것을 새긴 현판을 하사함으로써 이충무공과 관련된 최초의 사당이 되었다.
통영의 충열사보다 62년, 숙종30년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 보다 103년 전에 건립이 되었다.
이충무공을 주향으로 하여, 의민공 이억기, 좌찬성 안흥국을 좌우로 배향하였으며, 그후 숙종 35년에 충민공 이봉상이 새 사당을 짓고 석천제를 창설하였다.
이순신광장 · 전라좌수영거북선
이순신광장은 여수시 종화동 인근 구항을 공원으로 조성한것으로 온가족을 위한 공원으로 여수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는 곳이다. 여수 앞바다를 편안하게 볼 수 있고 돌산대교와 장군도 등을 조망권 내에 두고 있어 낮에는 넘실대는 푸른 바다와 파란하늘의 조화로운 풍경을 감상하기 좋고 밤에는 야경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순신 공원의 입구에 있는 로터리에는 이순신장군이 거북선위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동상이 있고 2014년 완공한 총장 35.3m, 폭 10.62m의 2층구조로 이루어진 전라좌수영 거북선이 놓여 있다. 거북선 선체 내부는 누구나 무료로 입장이 가능하다. 선체 내부에는 박물관처럼 수군 밀랍인형과 직접 장군복을 입고 장군이 될 수 있는 체험이 가능하다.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 오충사
여수시 기념물 제1호 이충무공 어머니 사시던 곳은 1593년부터 1597년까지 5년간 충무공의 어머니, 아내 방씨와 자녀들이 살았던 곳으로 충정공 정대수 장군의 집이었다. 세족식과 효 편지쓰기 체험을 할 수 있다.
이순신 장군을 따라 종군하다가 전사한 정철(丁哲)에게 나라에서 충절공(忠節公)이란 시호를 내린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을 이후 충의공(忠毅公) 정충(丁春), 충숙공(忠肅公) 정인(丁麟), 충정공(忠貞公) 정대수(丁大水)의 4위를 함께 모셔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1864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오충사라 이름한 것은 1921년 웅천동에 사우를 다시 세울 때 충무공을 주벽으로 모시고 기존의 4충신을 배향한 것에서 유래하였다. 여수시 기념물 제2호이다.
선소유적, 흥국사, 무슬목
사전 제 392호로 지정된 선소유적은 고려시대부터 배를 만드는 조선소가 있던 곳이며 임진왜란 때는 거북선을 만들었던 곳이다.
이충무공과 함께 일어난 의승수군 주진사이자 호국불교의 성지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년) 보조국사 지눌에 의해 창건되었다. 의승수군 유물전시관에는 이순신 장군의 친필편액 공북루(拱北樓)가 있으며 그 외 800여 점의 유물이 보존되어 있다.
현재는 해돋이 경관과 몽돌해변으로 유명한 무슬목 피서지, 이곳은 이충무공이 명량해전에서 패하고 돌아가는 왜군을 유인해 승리로 이끈 전략요충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