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임진왜란 당시 성명 미상의 강릉유씨가 처음 입도하여 정착하였다 하며 그 후 경주이씨(慶州李氏), 전의이씨(全義李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진주강씨(晋州姜氏), 경주최씨(慶州崔氏), 경주정씨(慶州鄭氏), 밀양박씨(密陽朴氏), 인동장씨(仁同張氏) 등이 차례로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하고 있음.
지명유래(地名由來)
마을 뒷산의 산봉우리가 연꽃 봉우리처럼 보이고 돌들이 모두 색을 띠고 있어 일명 흰섬 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며, 멀리서 섬을 바라보면 범이 새끼를 품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백호섬 이라고 도하였으나 지금은 백야리라 칭한다.
옥정산(玉井山)
일명 백화봉(白花峰)인데 백야봉(白也峰)이라 불린다. 백석(白石)으로 깎아 세운 것 같아 바라보면 청운(靑雲)같고 가서보면 옥정같다. 봉위에 석보(石堡)가 있는데 주회(周回)가 수궁(數弓)이 넘고, 보의 좌우에는 석문이 있는데 높이가 이마를 넘고, 좁기는 겨우 몸을 돌릴 정도로 십여보를 걸어야 보 안에 들어간다. 보 뒤에는 자갈밭이 많고 산이 험해서 락학하여 자갈자갈하고 보 앞에는 석벽이 천척이나 으리으리하다. (이순신이 난중일기를 보면 감목관(監牧官), 백야곶이 기록되어 있다.) 이 말은 화양면 장수리 봉아산과 백야산을 같은 지역으로 꿰일곳자를 쓴 것으로 알고 있다.
동두(東頭)마을(동머리)
백야 대동마을 약 2.5km 동쪽에 위치한 마을로써 옛날 백야 마을에서 당제를 모실 때 제주와 사내들의 몸과 마을을 깨끗이 하여 제를 올려야 마을에 액운이 오지 않는다 하여 임신부들을 모두 이곳으로 피신케 했던 곳이며, 동쪽에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으로 동두라 부름.
샛터[마을]
백야마을의 북쪽에 위치하며 새로운 터를 만들어 부락이 형성되었음.
개국석[개]
백야마을의 북쪽에 위치하며 새로운 터를 만들어 부락이 형성되었음.
짐막골개(진막포)[개]
동두마을 남서쪽 300m 지점에 있는 개. 짐막골 밑에 있음.
작은개[개]
동두마을 동남쪽 해안에 있는 개(포구)가 적다고 함.
큰개[개]
동두마을 동남쪽 해변에 있는 개. 개(포구)가 크다고 함.
진막골(진막촌)[골]
동두마을 남서쪽 약 300m 지점에 있는 골짜기. 이곳에서 김(짐, 해태)을 생산하였으니 김은 점으로 변하여 부른 것으로 생각됨.
안투골[골]
백야마을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묻었다고 함.
참나무골[골]
백야마을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참나무가 많이 자생하였다고 함.
절터골[골]
백야마을 남서쪽 약 1,400m 지점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절이 있었다고 함.
사장나무[나무]
백야마을 중심에 위치하며, 老巨樹(면나무) 그늘에서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로 이용되고 있음.
고당나무[나무]
백야마을 서북쪽 능선 제당주변에 서 있는 나무
몽돌밭[너설]
백야마을 서북쪽 해안. 일명 솔고지. 부근으로 몽돌로 형성된 포구가 남쪽으로 향하여 있어 항시 파도가 많아 돌이 몽글몽글함.
백야 목장지[농]
백야마을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화동목관부를 설치하여 군마 사육장으로 관리하여 오다가 원인도 모르게 말이 한 두 마리씩 죽어가자 지관을 불러 물어보니 목장주변에 묘가 있어 그렇다고 하자 묘 관리인을 찾아 이장을 한 후에는 말이 죽지 않았다는 전설이 있음.
당집(堂家)[당집터]
백야마을 165번지에 당집 주위에는 300여년 된 고목나무가 있고, 옛날에 목장의 말이 병들지 않고 잘 자랄 수 있도록 제를 지낸 곳.
고당(高堂)[골]
백야마을 서북쪽 능선에 있는 당. 마을의 높은 곳에 있는 당집. 이곳에 당집을 벽돌스러브로 신축하였다.
백야곶 봉수대[대]
백호산 정상 해발 286m에 있으며 임진왜란 당시 고흥 팔영산 봉화대에서 신호를 받아 돌산 봉화대로 연결하여 주던 곳.
당두[둔덕]
백야마을 서쪽에 있으며, 당집보다 높다하여 당두라고 불렀으며, 옛날 짐을 지고 가는 짐꾼들이 편히 쉬어가는 곳임.
큰언덕[大原社]
백야마을 서쪽 장아다리 부근에 있는 언덕이 높다고 함.
작은언덕[둔덕]
백야마을 몽돌밭 주변에 있는 언덕. 언덕이 낮다고 함.
세아지[등]
백야마을 동남쪽 동고지 끝 목넘어 있는 등. 지형이 새우처럼 구부러져 있다고 함.
똥메등[등]
백야마을 서북쪽 힛도 주변에 있는 등. 등의 모형이 사람이 똥을 싸 놓은 것 같다고 함.
생골샘[들]
백야 샛터마을 밑에 있는 샘. 연중 어떠한 홍수. 가뭄이 있어도 물의 양이 변하지 않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스한 물로 옥정의 지명이 이 샘에서 유래되었다 함.
백야등대[등대]
백야마을 남동쪽 약 3km 지점 백야리 산 34-2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1928년 12월에 설치하였고, 위치는 동경 127도 39분 4초, 북위 34도 36분 4초에 있음.
돌아지기[모퉁이]
백야마을 동남쪽 동두마을 길목에 있는 모퉁이. 동두마을을 가려면 이 모퉁이를 돌아가야만 한다고 함.
솔고지[목]
백야마을 남서쪽 끝에 있는 목. 솔개의 목처럼 쭉 뻗어 있는 형상이라고 함.
노랑바위[바위]
백야마을 동남쪽 해안에 있는 바위. 흙과 혼합되어 노랑빛을 띠고 있음.
범바구(虎岩)[바위]
샛터마을 서북쪽에 있는 바위. 옛날 소 먹이던 목동을 해치려던 범과 이를 막으려는 소가 싸우다가 범이 이 바위에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음.
돌문[바위]
석보터에 위치하며 돌이 나란히 서 있어 사람이 겨우 드나 듬.
지름바위[바위]
백야 몽돌밭 서북쪽에 있는 바위. 항시 기름을 부어 놓은 듯이 미끄럽고 반질반질함.
장아다리[버덩]
백야마을 서쪽 몽돌밭으로 가는 들판으로 옛날 산 주가 자기 산에 사람이나 짐승이 못들어가게 돌로 담을 쌓은 곳이 있는데 그 면적이 10여 정보에 이름.
동고지끝(동머리끝)[벼랑]
백야마을 동쪽 약 1.3km 지점의 벼랑. 마을의 동쪽 끝에 있음.
황천바구[벼랑]
동구마을 서남쪽 해변에 있는 벼랑. 바위들이 험하고 지대가 가파르다하여 이곳을 지나가다 떨어지면 황천(죽음)으로 간다고 함.
백야봉(옥정산 백야봉)[산]
백야마을 뒷편에 있는 백야에서 제일 높은 산. 산높이 약 286m
오랑지(오랑도)[섬]
백야마을 앞 해상에 있는 섬. 말에 매는 뱃대끈처럼 가운데는 넓고 양끝이 가늘게 생겼다.
딴여[여]
백야마을 남쪽 진막골 개안에 있는 여. 간조시는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시는 육지와 떨어진다고 함.
돌샘(石井)[우물]
석보지 돌문 안쪽에 있으며, 매우 깊어 두레박을 이용하여 물을 길어 썼다 함.
백야산성지(白也山城地)[터]
백호산 정상에 있는 산성의 터. 임진왜란 당시 왜적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성을 쌓아 감시하던 곳으로 현재 성곽원형은 보존되지 않고 성곽 흔적만 남아 있음.
석보터[터]
백야마을 남서쪽 약 1,400m 지점에 있는 절터. 절을 건립할 때 기둥을 놓기 위하여 주춧돌을 묻었던 자리라고 함.
쇠마당[터]
백야마을 서북쪽 약 500m 지점에 있는 터. 소를 매어놓고 키웠다고 함.
계두수도(힛도수도)[해협]
화양면 남단 계두(닭머리)와 백야도 사이의 물길.
백야수도[해협]
백야도와 제도리 사이의 수도이며, 이곳에 백야 등대가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