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임진왜란 당시 전주이씨(全州李氏)가 피난차 입도하여 터를 잡아 마을을 형성 하였고, 그후 김해김씨(金海金氏), 함평조씨(咸平趙氏), 장흥위씨(長興魏氏) 등이 차례로 입도하여 생활의 터전을 잡았다.

지명유래(地名由來)

마을 뒷산 능선이 호랑이 모양으로 생겼으며, 옛날 호랑이가 살았다고 하여 범호()자와 어조사야()자를 따서 호야(虎也)라 부르다가 어음이 변하여 혼역계로 불러왔다. 지방자치제로 인한 행정구역 개편으로 현재는 호령(號令)이라 칭하고 있다.

사장나무골짝[골]

사장나무 밑에 있는 골짜기.

새삼골[골]

호령마을 큰산밑에 있는 골짜기. 물이 맑고 숲이 우거져 새들이 맣이 서식하고 있음.

산타발[고개]

호령마을의 동편에 있는 고개. 산이 험악하여 오르기가 힘들다고 함.

모개나무골(모개등)[골]

호령마을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모과나무가 있었다고 함.

면낭골[골]

호령마을의 동남쪽 약 400m 지점에 있는 골짜기. 면감넝쿨이 많이 서식하고 있음.

작살밭꼴창[골]

호령마을의 동편에 있는 골짜기. 자갈이 많이 있음.

비삭골[골]

호령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 절벽의 주변에 비자나무가 자생하고 있음.

탱자나무골[골]

호령마을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 절벽의 주변에 비자나무가 자생하고 있음.

혼야개갯창(야갯가)[개]

호령마을 안에 있는 개.

잘박[개]

호령마을 앞 해상에 있는 개. 자갈이 많다고 함.

메몰랑[능선]

호령마을 큰 산 밑에 있는 능선. 바위에 맷새가 많이 서식하고 있음.

호랑이굴[굴]

호령마을 동남쪽 200m 지점에 있는 굴. 굴 안에 호랑이가 살았다고 함.

대포굴(大砲屈)[굴]

호령마을 동남쪽 해안에 있는 굴. 대동아전쟁시 대포에 맞아 형성된 굴이라 함.

사장나무(四場木)[나무]

호령마을에 있는 팽나무.

당집나무[나무]

호령마을 뒤에 있는 나무. 당제를 모시는 당집주위에 있음.

큰산밑[들]

호령마을 뒷편 큰산밑의 들.

큰자갈밭(큰장안)[들]

호령마을 동편에 있는 들. 밭에 자갈이 많이 있음.

불무등[등]

호령마을의 맥이 흐르는 등. 산세의 멈춘 곳에 묘를 쓰면 마을에 액운이 생긴다 하여 지금도 묘를 쓰지 못하고 있음.

당집[당]

호령마을의 당집. 신신제를 모시고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당집.

밖끝[부리]

호령마을의 동남쪽 약 200m 지점에 있는 부리.

어둥설이여[바위]

호령마을 동남쪽 약 2km 지점의 수면 위에 떠 있는 바위. 육지와 약 10m 떨어져 있는데 어둥설이란 사람만이 건너다녔다고 함.

송곳여[바위]

호령마을 동남쪽 약 150m 지점에 있는 바위. 바위가 송곳처럼 뾰족하게 생겼으며, 옛날에는 수면상으로 3~4m 정도 보였으나 지금은 파도에 절단되고 1m 정도만 남아 있다.

잘막여(자래바구)[바위]

호령마을 북서쪽 해안에 있는 바위. 바위 모형이 거북이(자라)목처럼 짤막하다고 함.

상바위[바위]

호령마을 뒷편 가장자리에 웅장하게 서있는 바위.

작은상바위[바위]

호령마을 상바위 옆에 위치한 바위. 상바위보다 작다고 해서 작은 상바위라 함.

대패널[벼랑]

호령마을 동남쪽 약 400m 지점에 있는 벼랑. 벼랑이 대패로 깎아 놓은 것처럼 반듯하다고 함.

수리밑통[벼랑]

호령마을 동남쪽 약 400m 지점에 있는 벼랑. 벼랑에 수리(독수리)가 살았다고 함.

쌩금산[산]

호령앞에 있는 산. 옛날에 금이 생산되어 채광업자가 금을 팠다고 함.

토끼산(토끼등)[산]

호령마을 서북쪽에 있는 산. 산의 모형이 토끼처럼 생겼음.

고여(孤嶼)(개여, 호여)[섬]

호령마을 남쪽 약 7km 지점에 있는 섬. 외로이 떠있는 것처럼 보임.

농여(녹여)[여]

호령마을 앞 선창가에 있는 여. 옛날 농어가 많이 잡혔다고 함.

솔밭여[여]

호령마을 앞 동편 해안에 있는 여. 주위에 소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음.

숫돌여[여]

호령마을 앞에 있는 여. 농기구를 가는 숫돌처럼 생겼다 함.

미끄럼여[여]

호령마을 앞에 있는 여. 여가 반질반질하다고 함.

갈모여[여]

호령마을 동남쪽 해안에 있는 여. 여가 삿갓처럼 생겼다 함.

빨래통(빨래둔병)[우물]

호령마을 앞 해변가에 있는 우물. 옛날엔 식수로 사용하였으나 현재는 빨래터로 사용하고 있음.

가장터[터]

호령마을 동쪽 약 600m 지점에 있는 터. 죽은 사람의 시신을 가매장했다가 상주의 운수가 맞는 해를 택하여 이장하기위하여 가매장을 했던 터.

당산[당]

호령마을 뒷산에 위치하며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당제를 모시던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