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임진왜란시 창원황씨와 경주김씨, 나주임씨가 와달부락에 입도하여 마을을 형성하였으며, 그 후 인동장씨(仁同張氏), 장흥고씨(長興高氏), 경주김씨(慶州金氏), 성주배씨(星州裵氏)가 신기부락에 입도하여 두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음.

지명유래(地名由來)

와달부락은 해달피가 누워있는 형세라 하였으며, 강을 건너야 뭍에 갈 수 있다하여 일본어로 강 건너갔다는 말로 '와다르다'는 말에서 유래하여 있다. 신기부락은 터가 세다는 말로 세터라 하였다는 유래로 전하고 있으나 많은 돌과 잡초들을 제거하고 새로운 터전을 일구었다하여 신기촌 이라고 함. 1980년 백야리에서 분리되면서 화합과 단결의 뜻에서 화백이라 개칭. 현재에 이르고 있음. 두 마을은 서로 이해관계가 있을 때마다 서로의 의사를 존중하고 합의하여 처리하자는 데서 화백리라 하였다.

신기(신기총)[마을]

와달마을 서북쪽 1km 지점에 있는 마을.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고 함.

큰골[골]

신기마을 서북쪽 약 500m 지점에 있는 골짜기. 신기마을의 두 개의 골짜기 중 가장 큰 골. 지석이 있고 사람이 살았다는 터와 가장돌이 있음.

작은골[골]

신기마을 서북쪽 약 150m 지점에 있는 골짜기. 신기마을의 두 개의 골짜기 중 작은골.

치끝[너설]

신기마을의 자갈밭 해변가로 구성된 해변끝이라 하여 치끝이라 하였으며, 방풍림으로 조성된 해송군락지가 형성되어 있어 하계휴양지로 활용하고 있음.

큰언덕[둔덕]

신기마을 남쪽 약 100m 지점에 있는 언덕. 신기마을 2개의 언덕 중 가장 큰 언덕.

작은언덕[둔덕]

신기마을 남쪽에 있는 언덕 중 작은 언덕.

썹등[등]

신기마을 서남쪽 약 200m 지점에 있는 들. 들이 크고 넓다고 함.

큰장안[들]

와달마을 서북쪽 약 500m 지점에 있는 들. 들이 크고 넓다고 함.

쇠마당(소마당)[버덩]

화백리 와달마을 서쪽에 있는 버덩. 소를 여름에 이곳에다 매어놓고(야간으로) 기르던 장소라고 함.

흙구덕[버덩]

와달마을 서쪽 쇠마당 옆에 있는 버덩. 옛부터 주민들이 집을 짓거나 집안에 흙이 필요할 때 이곳에서 공동으로 흙을 파서 사용하던 곳.

형제바위[바위]

신기마을의 서남쪽 백양산 뒤 능선에 있는 바위. 바위모양이 사람의 형상과 같이 생겼다고 함.

처녀바위[바위]

신기마을의 서남쪽 백호산 뒤 능선 형제바위 옆에 있는 바위. 옛날에 한 처녀가 사랑하는 남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이 바위에서 자살을 하였다는 전설이 있음.

광양돌[바위]

큰골, 가장골에 있는 지석(고인돌) 신기마을 뒷산 능선에 있는 바위. 옛날 목장이 있고 그 바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놀았다는 말만 전해 내려오고 있음.

구영바위(구멍바위)[바위]

신기마을의 서남쪽 약 1km 지점에 있는 바위. 바위들이 파도로 인한 침식작용으로 구멍이 나 있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