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임진왜란 당시 경주정씨가 피난길에 입촌하였다가 그후 김해김씨, 성주배씨가 입거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처음 입도한 경주정씨(慶州鄭氏)의 묘가 마을 앞 해변가에 있으나 그 후손은 알 수 없고 세인들의 무관 속에 방치되어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마을 전체가 잔디로 깔려있어 띄모(茅), 밭전(田)자를 써 모전 이라고 칭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마을 앞 해변가에는 600m 가량의 길이로 자갈이 뒤덮어 있어 일명 자갈밭이라고 별칭이 붙어 있다. 태풍이 불어닥치면 자갈이 밀려들어와 큰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 개안(개창)[개] : 모전마을의 남쪽 해안에 있는 개. 마을 앞에 있다.
- 배뱃고단대(백고단대)[개] : 모전마을 남서쪽 1,500 지점에 있는 개. 지형의 돌들이 반질반질하고 배꽃처럼 생겼다하여 흰백(白)자를 써 백고단대 또는 배뱃고단대라 부름.
- 셋김이(세금이)[개] : 모전마을의 남서쪽에 있는 개. 금이 생산되었다 한다.
- 띠밭개(띠발넘목)[개] : 모전마을(띠밭매기) 있는 개.
- 당산나무[나무] : 모전마을 뒷산중턱에 있는 소나무 당산이 있음.
- 큰장안[들] : 모전마을 북동쪽에 있는 들. 밭이 많이 있다고 함.
- 몰마장[들] : 모전마을 북동쪽 약 200m 지점에 있는 들. 화동목관부시절. 개도에도 말을 키웠다는 구전이 있는데 개도 전지역에서 말을 키워 몰마장에서 말을 모았다고 함.
- 자갈등(소적등)[등] : 모전마을 남쪽해안에 잇는 자갈등성이. 등성이가 자갈로 되어 있음.
- 당집[당] : 모전마을 뒷산중턱에 위치하며 토신, 용신제를 모시는 제당.
- 들머들(소마밑)[떼] : 모전마을에서 호령쪽으로 약 100m 지점에 위치한 바위군으로 큰 바위가 듬성듬성 있음.
- 장목(칼장목)[목] : 모전마을 남서쪽에 있는 목. 칼자루 같이 길다고 함.
- 동매[모롱이] : 모전마을 남서쪽 1,500m 지점에 있는 모롱이. 동백나무가 많이 서식하고 있음.
- 농어끝(농어뜸)[바위] : 모전마을 띠밭목 해안에 있는 바위. 해안에 농어가 많이 서식했다고 함.
- 꾹굴바구[바위] : 모전마을 남서쪽 약 700m 지점에 있는 바위. 파도가 치면 꾹꿀꾹꿀 소리를 낸다고 함. 설립으로 화개면과 옥정면의 통합으로 화정면 개도리였으며, 1952년 지방자치제 행정구역 재개편으로 여천군 화정면 서삼리로 명의를 개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음.
- 노랑바구(오리똥굴)[바위] : 모전마을 서남쪽 약 1,300m 지점에 위치하며 바위가 엇비스듬하다고 함.
- 엇바지(엇바위)[바위] : 모전마을의 서남쪽 약 1,300m 지점에 위치하며 바위가 엇비스듬하다고 함.
- 이른끝(이른끝대)[버덩] : 모전마을 서남쪽 절벽에 있는 버덩. 사람이 다니기가 어렵다고 함.
- 마장넘(馬場)[버덩] : 모전마을 서남쪽 지점에 있는 버덩. 개도에 말을 키웠던 시절 말이 내려와 물을 먹었다고 함.
- 소나넘[버덩] : 모전마을 서남쪽 1,000m 지점에 있는 버덩. 소나무가 많이 있음.
- 육고여(陸孤嶼)[섬] : 모전마을 남쪽 약 1.5km 지점에 있는 섬. 육지와 떨어져 있어 외롭게 보임.
- 진거름[산] : 모전마을 서남쪽에 있는 산. 산 위의 지형이 길다고 함.
- 자리박여(질막여)[여] : 모전마을 동남쪽 해상과 호령마을의 서남쪽 해상에 있는 바위. 거북모양의 바위가 물이 잘박한 위치에 있었다고 함. 지금은 파도에 파손되어 그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음.
- 외통여[여] : 호령마을 동남쪽에 위치하며 바닷물의 방향이 일정하게 흐르는 바다속에 있는 여.
- 포여(의밑여)[여] : 모전마을 서남쪽 약 700m 지점에 있는 여. 포도송이처럼 생겼음.
- 골샘이[우물] : 모전마을 북쪽에 있는 샘. 조그마한 골짜기에 있다고 함.
- 논지구석(장사골)[터] : 모전마을 서쪽 약 200m 지점에 옛날에 논이 있었다고 함.
- 소남밑[터] : 모전마을에서 호령리 쪽으로 약 100m 지점에 있는 터. 울창한 소나무 밑에 있음.
- 띠밭(띠밭매기)[터] : 화산마을의 서북쪽 약 2km 지점에 있는 터. 진디(띠)가 많다고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