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임진왜란 당시 경남 김해땅에서 왔다는 김해김씨 선비 한 분이 난을 피하기 위하여 이곳으로 와서 정착하게 되었다. 그후로 백천조씨(白川趙氏), 진주강씨(晋州姜氏), 남평문씨(南平文氏), 밀양박씨(密陽朴氏), 나주임씨(羅州林氏), 전주이씨(全州李氏), 경주정씨(慶州鄭氏), 손씨(孫氏), 경주이씨(慶州李氏) 등이 차례로 입향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최초로 입도한 김씨의 집안은 후손이 무후하여 알 수가 없고, 다만 묘만 남아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마을 서쪽에 숫돌이 많이 난다고해서 숫돌여자와 돌석자를 써서 여석이라 부르고 있으며 현재도 숫돌이 많이 생산되고 있다. 현재 민경산업이란 광업사가 채석하여 일본, 대만, 동남아에 수출하고 있음. 개도리가 큰 섬인관계로 동부와 서부로 분리하여 호령, 모전, 여석의 3개 부락을 서삼리라 이름하여 통합 운영해오다가 1962년 지방자치제 행정구역 재개편으로 호령, 모전이 각각 분리되어 현재에 다시 여석리로 부르고 있다.
엄금남이(음량금)[마을]
서삼마을에서 서북쪽 모전마을로 가는 중간에 있는 마을. 동쪽에 큰산이 가려 겨울철이면 해를 많이 볼 수 없는 음지라 하여 음량금이라 했다가 엄남금으로 변했음.
벅수골[골]
여석마을 동쪽 약 200m 지점에 있는 골짜기 벅수가 세워져 있음.
물맞이[개]
개도 서삼마을 북동쪽에 있는 개. 해안이 방처럼 둥글다고 함.
건너통[개]
여석마을의 건너편에 있는 골짜기 마을 안쪽에 있음.
사장나무[나무]
서삼마을 아 사장터에 있는 나무.
당산[당]
서삼 뒷산중턱에 위치하며 마을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모시는 곳.
큰재골[고개]
서삼마을에서 서쪽 약 300m 지점에 있는 산. 산의 바위가 쇠처럼 검붉고 단단하다고 함.
사장[터]
서삼마을 정자나무 아래에 있는 터. 동서남북 사방으로 길이 뻗어 있음.
보리마당[터]
서삼마을 창고 앞 터. 옛날 보리 타작을 하던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