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서기 1885년 금오도 개척당시 조정으로부터 권농관이 본 마을에 파견되어 현 두모리 1367번지에 관사를 짓고 인근 제도민을 동원하여 방파제를 수축하는 등 금오도내 최초의 개척중심지가 되었으며 당신 경차사관(敬差事官) 산하 도포수(都砲手)였던 박치안(朴致安)이 서기 1885년 정월에 최초 입주하였고 서기 1889년 6월에 최순익(崔順益)이 초대 금오도 둔장(屯長)으로 임명받아 본격적으로 개척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명유래(地名由來)

본 마을은 금오도가 봉산(封山)이었을 당시 사슴 수렵차 내려오는 관포수들이 처음 도착한 개라 하여 "첫개"(初浦)라 부르다가 그후 옥녀봉에 내려오는 전설에 의해 두포(斗浦)라 하였다 한다. 옥녀봉의 옥녀가 이곳 상거리(뽕나무 키우는 곳)에서 뽕을 따다 누에를 치고 누에고치를 말(斗)로 되었으며 인접마을인 모하(母賀)가 곡창지대라 하여 곡식과 누에를 척도하는 말()이 있어야 한다고 두포(斗浦)라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