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이 마을에는 전란을 피해 경남의령에 살던 의령남씨(宜寧南氏)인 남서백이 1680년대에 일가족을 데리고 와 터를 잡았다고 전하여 진다. 그뒤로 능주구씨(綾州具氏), 경주정씨(慶州鄭氏)등이 계속 이주해 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옛날 의령남씨가 들어온 후 한때 삼단동이라고 불리운 적이 있었으나 마을앞으로 수암산(水岩山)을 이루는 황새봉 갑의산(甲衣山) 옥녀봉(玉女峰)등이 있는데 그 형세들이 마치 봉황이 날아가는 형국과 같다하여 새봉()자와 머리두()자를 써서 봉두(鳳頭)라는 이름으로 바꾸게 되었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시루봉 전설

의령남씨가 입향할 때 데려온 딸이 30세가 넘도록 혼처가 생기지 않아 애를 먹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도승(道僧)이 찾아와 걱정이 많은 사람같다고 하자 사실대로 말해 주었다.

그러자 도승은 풍수지리설에 의해 이 마을에는 옥녀봉과 가마봉이 있고 또 시루봉이 있는데 마을앞 하천의 한가운데가 바로 시루구멍이니 그곳에다 나무를 심어 항상 그늘지고 습기가 있게 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면서 자기가 시킨대로 하라고 말했다.

남씨는 도승이 일러준대로 딸을 옥녀봉 밑으로 데려가서 목욕을 시키고 시루봉 큰 구멍인 당산에서 시루떡을 쪄서 시루봉 칼날 바위밑에서 시루떡을 쪼개 가마봉에 가서 천지신명께 제를 올리면서 딸의 배필을 만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런데 그 절차를 마치던 날 해질무렵에 난데없이 과거를 보러가던 선비가 그곳에서 쉬어가게 되었는데 그 날밤 잠을 자기 위해서 들어간 방이 뜻밖에도 처녀가 혼자 자는 방이어서 그만 이들은 인연을 맺고 말았다.

그 후 선비는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른 후 처녀와 백년해로 하면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잘 살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