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이 마을에는 맨 먼저 (숙종 18년 추정) 개성왕씨(開城王氏)가 일가를 데리고 와 터를 잡았다고 하며, 그후 달성서씨(達成徐氏), 영일정씨(迎日鄭氏), 경주정씨(慶州鄭氏), 밀양박씨(密陽朴氏), 김해김씨(金海金氏), 전주최씨(全州崔氏), 해주오씨(海州吳氏) 등이 계속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또 다른 일설에 의하면 개성왕씨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신라(新羅)때부터 마을이 형성 돼 있어서 국사봉(國師峰) 밑에 큰 절이 있었고, 거기에 수백명의 승려(僧侶)가 있었다고 하지만 확인할 길은 없으나 지금도 거기를 절터라고 부르고 있어 상당한 신빙성이 있을 것 같다.
지명유래(地名由來)
현천1구는 전술하다 시피 선천, 중촌, 오룡의 세 마을로 짜여져 있다.
선천(先川)
마을 앞에 조그만 시내가 있는데 제일 먼저 마을이 이뤄졌다고 해서 먼저선(先)자와 동리앞에 시내가 있다해서 내천(川)자를 써서 선천(先川)으로 이름 지었는데 한때는 마을 앞의 내를 따서 이 마을을 단계(丹溪)라고 부른적도 있었다.
중촌(中村)
세 마을중 한가운데 있다해서 가운데 중(中)자와 마을촌(村)자를 써서 중촌(中村)이라고 했다. 그리고 중촌은 마을뒤에 있는 매산(梅山)에서 발원한 조그만 내(川)가 있는데 물이 없고 늘 말라 있어 가물은 내라는 뜻에서 가물현(玄)자와 내천(川)자를 써서 가무내 즉 현천(玄川)이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중촌마을은 현천의 세 마을중 사실상의 중심마을이라 할수 있는데 그 모양이 마치 물위에 떠있는 연꽃과 같다해서 연화부수(蓮花浮水)형국이라 부자(富者)가 많이 난다는 음양풍수설(陰陽風水說)이 있기도 하다.
오룡(五龍)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들이 마치 다섯 마리 용(龍)의 형국 같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