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이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잘 알 수 없으나 제일 먼저 들어온 성씨는 여흥민씨가 터를 잡았고 그 뒤를 이어 영일정씨, 김해김씨, 초계최씨, 전주이씨 등이 연달아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여흥민씨는 현재 후손이 한집도 살고 있지 않아 사실여부를 확인 할수 없으며 상관이나 하관마을이 거의 같은 연대에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옛날 화양면 화동리를 중심으로 말을 키운 목관(牧官)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이 목관의 관원들이 순천부와의 사이를 자주 왕래하였는데 그 길목이 이 마을에 있기 때문에 관원들의 출입이 많아 벼슬관(官)자와 터기(基)자를 부쳐 관기(官基)란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때에 들어와 1914. 4. 1 전국 행정구역을 대폭적으로 개편할 때 집관(館)자와 터기(基)자로 바꿔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