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이 마을이 형성된 연대와 입향시조는 알수 없으나 구전되어온 바에 의하면 충북 단양(丹陽) 땅에 살던 단양우씨(丹陽禹氏) 일가가 이곳에 제일 먼저 와 살았고 그다음 파평윤씨(坡平尹氏) 일가가 내기마을로 창원황씨(昌原黃氏)가 흑산마을로 김영김씨(金寧金氏)가 가산마을로 들어와 각각 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내기(內基)
옛날부터 역촌(驛村)이나 관촌(官村)으로 불리어 왔다. 역촌이나 관촌이란 말은 옛날 교통이 불편했던 시절에 관원들의 내왕을 돕기 위해서 객사(客舍)나 마필(馬匹)이 준비되어 있는 곳을 역참(驛站)이라 했고 또 암행어사들의 출도에 동원되기 위한 역졸들이 집단적으로 사는 마을을 관촌이라고했다.
그런데 이 마을은 엣날 여수에서 순천으로 가기 위해 여수의 민드레미재를 넘어 쌍봉의 무상원(無常院)을 지나 이 덕양역(德陽驛)을 거쳐 사곡(沙谷)을 지나 순천 해룡면(海龍面)으로 빠지는 일반역이 아니었나 생각된다.참조 문헌에 보면 이 덕양역은 전북의 오수(獒樹) 가도에 속하는 역(驛)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물론 이 덕양역은 지금의 세동(細洞)에 있는 덕양역(德陽驛)이 아니고 옛날의 내기마을이 덕양역이었다는 것을 구별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을이 언제부터 내기로 불러지게 됐느냐 하면 아마도 한일합병 뒤 옛날의 역촌들이 없어짐에 따라서 이 마을이 덕양 여러마을의 중심지라는 뜻에서 안내(內)자와 터기(基)자를 써기 내기(內基)라고 부르지 않았나 생각된다.
흑산(黑山)
구전되어온 바에 의하면 옛날 이 마을뒤에 울창한 숲이 있어 숲이 푸르다 못해 오히려 검게 보인다고 해서 검을흑(黑)자와 뫼산(山)자를 써서 흑산이라고 불은 것이 동리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가산(佳山)
이 마을은 국가지원지방도 22호선이 달리는 광대골재입구의 좌측에 있는데 서쪽을 향해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자리잡고 있다.이 마을이 가산(佳山)으로 이름을 짓게된 것은 남쪽은 울창한 숲이요 서쪽은 새가 나는 것 같은 현상이며 그 아래 그림같은 들판이 아름답게 보여 아름다울가(佳)자와 뫼산(山)자를 써서 가산이라 불렀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