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이 마을 들에는 원대포에 살던 전주이씨가 1760년경 일가족과 함께 이곳에 옮겨왔다고 전하여지고 있다. 그후 경주이씨, 김해김씨 등 여러성씨가 계속 이주해옴으로써 4개 마을들이 점차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뒤 전주이씨(全州李氏)를 비롯한 기타 성씨들이 계속 이주해와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마을은 현 위치로 이주한 역사가 짧은 만큼 옛날의 유물유적 같은 것은 별로 찾아 볼 수 없다.

지명유래(地名由來)

구족도(拘足島)

옛날 어느 도승이 명산을 찾아 다니다가 이곳을 지나던 중 마을앞 동쪽에 있는 삼일면 화치마을의 화룡산과 쌍봉면 전봉산이 뽀족이 내다보고 있는 것을 보고 도둑이 심할 것이라면서 그의 예방책으로 동리의 이름을 개구()자와 발족() 섬도()자를 써서 개가 도둑을 지키는 섬(拘足島)으로 하라고 일러주어 도승이 일러준대로 구족도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한편 설군 당시에는 여수군 구산면이었는데 1914.4.1. 전국 행정 구역 개편때 소라면 대포리로 편입된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편 이 마을에서는 대포 일원에서 일찍부터 원예작물 재배에 눈뜨기 시작한 선진 마을로 현재 52호의 주민이 살고 있으며 대포2구의 중심 마을이다.

남해촌(南海村)

이 마을은 고뢰농장에서 대포 간척지를 막은뒤 가까운 시군을 돌면서 농사를 지을 소작인들을 모집하고 다녔다. 거기에 응해서 제일 먼저 이곳에 이주해 온 사람이 경남 남해의 박금실이었고 그 뒤를 이어 남해에서 많은 사람들이 계속 건너옴으로써 이 마을은 순전히 남해 사람들만으로 채워져 『남해촌』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래서 일제때는 물론 해방후에도 남해사람 일색이었는데 1970년대 이후 전국이 공업화 되자 남해 사람이 많이 돌아가고 지금은 오히려 지방 사람들이 많아 모두 36호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리고 이 남해촌에는 들 가운데 섬같이 흙산이 있어 이곳을 똥메라고 말하는데 일제때 고뢰농장에서는 여기에 그들의 수호신인 아마데라스오미가미(天照大神)을 받드는 다가세진좌(高瀨神社)를 세우고 그들의 국경일이나 기념일에는 소라의 각 기관원과 학생들을 동원하여 늘 참배시켰다.

가마등(駕馬燈)

가마등은 구족도 바로 밑에 있는 마을이다. 이곳이 가마등이라는 이름이 붙게된 것은 통일신라때 임금님이 가마등에 올라가 지세를 살피고 내려오다가 해가 저물어서 이곳에서 병사들과 함께 솟을 걸어 놓고 밥을 지어먹고 하루밤 자고 갔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가마봉에는 몰바위 받봉바위라는 큰 바위가 있는데 임금님과 인연이 있는 바위라 해서 신성시 했으며 가뭄이 들거나 동리에 흉사가 생기면 이 바위 밑에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현재 14호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상촌(理想村)

이 곳 산 비탈에는 신풍 애양원에서 이주해 온 이상촌이 생겨냈다. 이들은 신풍애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음성으로 밝혀져 병원 당국의 배려에 의하여 이곳으로 옮겨와 정착 했는데 농업과 축산을 주로하고 있으며 현재 이영희를 비롯 11세대가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