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이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알수 없으나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충북 단양(丹陽) 땅에 살던 우씨 일가가 1640년경 이곳에 정착한 것이 마을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그 뒤 전주 최()씨를 비롯한 여러성씨들이 계속하여 이주해옴으로써 마을이 제대로 짜여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통천(通川)

옛날 사람들이 이마을의 물이 너무 좋아 땅을 파면 통()을 묻어 샘을 만들었다는 유래에서 통나무통(通)자와 샘천(泉)자를 써서 통천으로 불렀다고 한다. 그런데 그 뒤 일제때에 들어와 샘천()를 내천()자로 고쳐 오늘날 통천(通川)으로 부르고 있다.

성재(星才)

구전 되어온 바에 의하면 조선조 중엽 마을 뒤 당산나무밑에 공자(孔子)님의 영정(影幀)을 모시는 모성제(慕聖)가 있어 선비들이 많이 모이게 되어 성인성()자와 재주재()를 쓰게 되어 聖才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언젠가부터 별성()자와 재주재()자로 바꿔졌다고 한다.

가장(佳長)

이 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전에 신안주씨(新安朱氏)가 처음와서 터를 잡았다. 그 뒤 전주최씨(全州崔氏), 진주강씨(晋州姜氏)등이 연이어 들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여 지고 있다.

그런데 마을 이름을 아름다울 가()와 긴장()자를 써서 가장동(佳長洞)이라 한 것은 이 마을이 양지바른 긴 골짜기에 옴팍 들어가 있는데다 주의를 둘러싸고 있는 크고 작은 산등성이들이 하도 아름답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