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이 마을이 형성된 연대는 잘 알 수 없지만 고령신씨(高靈申氏) 14대손인 신사문(申泗文)이 광양(光陽)땅에서 살다가 가족을 데리고 이 마을로 이주해와 제일 먼저 터를 잡았다고한다.그 다음으로 영양천씨(潁陽千氏), 김해김씨(金海金氏) 등 여러성씨들이 계속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전해온 바에 의하면 옛날 화양면 일대가 나라에서 말을 키우는 목장(牧場)이었고 이를 관리하는 감목관(監牧官)이 화동리에 있었기 때문에 목관의 관원(官員)들이 자주 순천부(順天府)로 드나들었다.그런데 이들 관원들이 순천부로 내왕할려면 반드시 이 마을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관원들의 출입이 자자한 땅이라는 의미에서 벼슬관()자와 터기()자를 부쳐 관기(官基)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때인 1914. 4. 1 전국 행정구역을 대폭개편하면서 집관()자와 터기()자를 써서 관기(館基)로 마을 이름이 바꿔진 것이다.

남해촌(南海村)

이 마을에서 가사리로 가는 도로를 따라 500m쯤 내려가면 남해촌이라는 10여호 가량되는 마을이 나온다. 관기 간척지가 조성되자 고뢰농장에서는 경남 남해(南海)에서 소작인을 모집해 왔는데 그때 박보근(朴輔根) 일가를 비롯해서 10여가구가 남해에서 건너왔기 때문에 지금도 이 마을을 남해촌(南海村)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나 7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남해에서 온 사람은 박보근밖에 없고 나머지는 모두 인근에서 온 사람들이어서 시대의 변천을 느끼게 한다.

산양골(山陽谷)

하관마을에 속하고는 있지만 바로 죽림 저수지 밑에 산양골(山陽谷)이라는 외딴 마을이 있다. 이 마을은 김맹순(金孟順)이 원래 화양면 이목리에 살다가 관기 간척지 땅을 짓기 위해 이곳에 왔는데 산양골이란 지명은 산밑에 있는 양지 바른곳이란 뜻이다. 그런데 1960년대 한창 농사가 세월이 있을 때는 모두 7호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4호 밖에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