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가사리 마을이 형성된 것은 대체로 고뢰농장이 관기 간척지를 막은 1922년대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큰 가사리는 관기 간척지란 널따란 들판이 새로 생겨나자 당초 전주에서 마륜에 와 살던 전주최씨(全州崔氏) 일가가 이곳으로 먼저 이사해 왔고 그 다음 남평문씨(南平文氏), 연안차씨(延安車氏), 곡부공씨(曲부孔氏) 등이 차례로 이주해와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가사리 3개 마을 중 제일 큰 마을이다.

그 다음 작은 가사리가 조성되었는데 이 마을은 당초 오룡으로 넘어가는 높은 산비탈에 주씨(朱氏)와 정씨(鄭氏), 최씨(崔氏) , 문씨(文氏) 등 너댓집이 자리를 잡은 뒤 어느 정도 동리가 짜이면서 그밑의 평지에도 백일선(白日善)을 비롯한 몇집이 이사왔다.

농곡마을은 김씨(金氏), 서씨(徐氏), 신씨(申氏), 임씨(林氏) 등이 차례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으나 농곡마을은 어쩐지 근년에 와 눈에 띄이게 공동화 되가는 느낌이다.

지명유래(地名由來)

오늘날은 이 세마을이 각기 큰가사리 작은가사리 농곡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원래 가사리라는 지명은 사실은 큰가사리로 인해 생긴 지명이다. 따라서 이마을의 본래 이름은 큰 가사리옆에 새로 동리가 생기고 보니 부득이 큰가사리와 작은가사리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이다. 그리고 이 마을을 가사리라고 부르게 된 연유는 이곳은 해변가였음으로 아름다운 모래밭이 길게 뻗쳐 있어 아름다울 가()자와 모래사()자를 써서 가사리(佳沙里)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또 일설에는 마을 뒷산이 개(개)같이 생겨 개사리(개沙里)라 했다고도 전하여지고 있다. 또한 제일 위에 있는 마을을 농곡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농사짓는 사람들만이 모여사는 골짜기라는 뜻에서 농사농()자 골곡()자를 써 농곡(農谷)이라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