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은 모르지만 꼭 찾아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께 감사드리고싶습니다.사회복지과 담당자님 그리고 돌산읍사무소 직원분등 고맙습니다.
- 날짜
- 2026.08.26
- 조회수
- 21
이름은 모르지만 꼭 찾아 감사드리고 싶은 분들께 감사드리고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꼭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저는 거의 20년 가까이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2026년 6월 25일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태국인 아내는 저 하나만 믿고 먼 타국에서 한국까지 함께 왔습니다.
저희에게는 한국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취업도 해야 했고, 아내의 체류와 비자 문제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한국에서 의지할 지인도 거의 없었고,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조차 막막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을 돌보는 일도 함께 했습니다.
특히 아버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는 저와 아내가 함께 거의 한 달 가까이 병간호를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의 식사와 생활을 도와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드리는 일까지 하면서, 병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곁을 지켰습니다. 병원에 있는 작은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라도 아버님 곁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아버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시고 퇴원하신 것은 저희에게도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희 부부는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취업 준비와 비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는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립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을 외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저희도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저희가 몇 시간씩 자리를 비우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고, 가족의 일을 더 도와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저와 아내의 앞으로의 생활도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살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8월 5일, 저와 아내는 오후에 도서관에 갔습니다.
빨리 돌아오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저희에게는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녁 9시쯤 도서관이 끝날 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는 눈치가 보여 방에서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아버님께서 “쓸데없이 밥은 안 먹고 돈을 쓰면서 라면을 먹는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며 저를 방으로 부르셨고 욕설을 하셨습니다.
저는 말다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먼저 욕을 하거나 따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단지 아내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 앞에서는 욕 같은 말씀을 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가 잘못한 게 없으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럴 거면 나가버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집을 나가려고 짐을 챙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님께서 저에게 손찌검을 하셨고, 아내가 보는 앞에서 뺨까지 맞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참고 견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아들이니 참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는 저 하나만 믿고 먼 타국에서 한국까지 온 사람입니다.
아내는 한국에 와서 잘못한 것도 없이 매일 살림을 하고 저를 도우며 지냈습니다.
그런 아내가 눈앞에서 그런 상황을 함께 겪으며 힘들어하고 우는 모습을 보는데, 저는 더 이상 아내를 그 집에 데리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와 아내는 8월 5일 저녁 급하게 집을 나왔습니다.
당장 갈 곳도 마땅하지 않아 옷가지 등 필요한 짐만 챙겨 나와 민박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의지할 지인도 없었습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저와 아내 모두 정신적으로도 너무 지쳐 있었고, 저는 정말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129에서는 여수시청 사회복지과에 긴급생계지원 등을 신청해보라고 알려주셨고, 1366에서는 가정폭력 등의 상황에 대해 상담을 받고 그 상담을 바탕으로 긴급생계지원 신청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안내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수여성상담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습니다.
제가 여수여성상담센터에서 가장 감사했던 것은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제 상황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공감해 주셨고, 제가 앞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함께 알아봐 주셨습니다.
성함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당시 저를 상담해 주신 상담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여수시청에도 찾아갔습니다.
갑자기 예약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찾아가서 정말 막막한 마음으로 **“도와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제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여수시청 사회복지과에서 긴급생계지원과 관련하여 상담해 주신 여성 담당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함은 모르지만, 제가 당시 어떤 상황에서 찾아갔는지는 8월 25일 기록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신청해야 하는지 단계별로 알려주셨고 돌산읍사무소에 가서 신청해보라고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돌산읍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날 먼 길을 버스를 타고 찾아갔는데, 바쁜 업무 중에도 제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시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과 필요한 절차를 하나씩 설명해 주신 돌산읍사무소 생계지원 담당자님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성함을 몰라 이렇게밖에 감사드릴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저에게는 그분들의 안내가 단순한 행정절차 설명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가진 것도 많지 않았고, 의지할 사람도 없었으며, 당장 생계를 이어갈 방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분 한 분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이곳에 신청해 보세요.”
“이 절차를 밟아보세요.”
“이것도 알아보세요.”
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말을 따라 하나씩 움직이다 보니, 처음으로 다시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긴급생계지원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지원금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지금 “다시 살아볼 방법이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서류 하나를 준비하고, 다음 절차를 알아보고, 취업을 준비하고, 아내의 비자 문제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다시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정말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알려주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한번 버텨보자.”
“나와 아내가 다시 일어서 보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를 정말 크게 느꼈습니다.
공무원이나 상담사분들에게는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상담과 행정 안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그 한 번의 상담과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안내가 다시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거의 2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돌아와 이렇게 힘든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순간에 오히려 한국의 상담기관과 지자체에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다시 한번 힘을 내보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반드시 재기에 성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젠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꼭 다시 찾아뵙고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때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함은 모르지만 꼭 찾아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이 글을 보시는 관계자분께서 당시 저를 상담해 주셨던 분들이 누구인지 확인해 주시고, 제 감사의 마음을 꼭 전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수여성상담센터에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끝까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 주신 상담사분,
여수시청 사회복지과에서 긴급생계지원 절차를 차근차근 안내해 주신 담당자분,
그리고 돌산읍사무소에서 바쁜 와중에도 제 사정을 들어주시고 생계지원 절차를 안내해 주신 담당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저는 이미 큰 것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살아볼 수 있다는 희망을 받았습니다.
저와 아내는 그 희망을 놓지 않고 반드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재기에 성공해서 웃는 얼굴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는 오늘보다 훨씬 밝은 모습으로,
“그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라고 직접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하루빨리 이겨내고, 이 나라와 여수시 그리고 제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게 다시 살아가겠습니다.
성함은 모르지만 저희 부부에게 도움의 길을 알려주신 모든 상담사분들과 공무원분들께,
진심으로, 정말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 글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래도 꼭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저는 거의 20년 가까이 해외에서 생활하다가 2026년 6월 25일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태국인 아내는 저 하나만 믿고 먼 타국에서 한국까지 함께 왔습니다.
저희에게는 한국에서 다시 살아가기 위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취업도 해야 했고, 아내의 체류와 비자 문제도 준비해야 했습니다. 오랜 해외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터라 한국에서 의지할 지인도 거의 없었고, 당장 생활비를 마련하는 것조차 막막했습니다.
귀국 후에는 연세가 많으신 부모님을 돌보는 일도 함께 했습니다.
특히 아버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셨을 때는 저와 아내가 함께 거의 한 달 가까이 병간호를 했습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님의 식사와 생활을 도와드리고 대소변을 받아드리는 일까지 하면서, 병원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곁을 지켰습니다. 병원에 있는 작은 침대에서 잠을 자면서라도 아버님 곁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아버님께서 건강을 회복하시고 퇴원하신 것은 저희에게도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저희 부부는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취업 준비와 비자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돈이 없는 상황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은 시립도서관에 가서 공부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을 외면하려고 했던 것이 아닙니다.
저희도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저희가 몇 시간씩 자리를 비우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으셨고, 가족의 일을 더 도와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저 역시 부모님을 돕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저와 아내의 앞으로의 생활도 준비하지 않으면 정말 살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8월 5일, 저와 아내는 오후에 도서관에 갔습니다.
빨리 돌아오라는 말씀을 들었지만, 저희에게는 앞으로 살아가기 위해 공부하고 취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저녁 9시쯤 도서관이 끝날 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서는 눈치가 보여 방에서 컵라면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일로 아버님께서 “쓸데없이 밥은 안 먹고 돈을 쓰면서 라면을 먹는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며 저를 방으로 부르셨고 욕설을 하셨습니다.
저는 말다툼을 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먼저 욕을 하거나 따진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단지 아내가 옆에 있는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내 앞에서는 욕 같은 말씀을 하지 말아 주세요. 저희가 잘못한 게 없으니 너무 그러지 마세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럴 거면 나가버려”**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집을 나가려고 짐을 챙겼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님께서 저에게 손찌검을 하셨고, 아내가 보는 앞에서 뺨까지 맞게 되었습니다.
저 혼자였다면 어떻게든 참고 견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께서도 아들이니 참으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제 아내는 저 하나만 믿고 먼 타국에서 한국까지 온 사람입니다.
아내는 한국에 와서 잘못한 것도 없이 매일 살림을 하고 저를 도우며 지냈습니다.
그런 아내가 눈앞에서 그런 상황을 함께 겪으며 힘들어하고 우는 모습을 보는데, 저는 더 이상 아내를 그 집에 데리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와 아내는 8월 5일 저녁 급하게 집을 나왔습니다.
당장 갈 곳도 마땅하지 않아 옷가지 등 필요한 짐만 챙겨 나와 민박집에서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거의 20년 만에 한국에 돌아왔는데 의지할 지인도 없었습니다.
당장 다음 달부터 어떻게 생활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저와 아내 모두 정신적으로도 너무 지쳐 있었고, 저는 정말 어디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조차 몰랐습니다.
그래서 하나씩 도움을 요청하기 시작했습니다.
129에서는 여수시청 사회복지과에 긴급생계지원 등을 신청해보라고 알려주셨고, 1366에서는 가정폭력 등의 상황에 대해 상담을 받고 그 상담을 바탕으로 긴급생계지원 신청도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을 안내받았습니다.
그리고 여수여성상담센터를 찾아 상담을 받았습니다.
제가 여수여성상담센터에서 가장 감사했던 것은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제 상황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공감해 주셨고, 제가 앞으로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함께 알아봐 주셨습니다.
성함을 정확히 기억하지 못해 죄송하지만, 당시 저를 상담해 주신 상담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여수시청에도 찾아갔습니다.
갑자기 예약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찾아가서 정말 막막한 마음으로 **“도와주세요”**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저를 그냥 돌려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제가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 하나하나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습니다.
특히 여수시청 사회복지과에서 긴급생계지원과 관련하여 상담해 주신 여성 담당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성함은 모르지만, 제가 당시 어떤 상황에서 찾아갔는지는 8월 25일 기록을 통해 확인하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 막막해하고 있을 때, 어디에서 무엇을 신청해야 하는지 단계별로 알려주셨고 돌산읍사무소에 가서 신청해보라고 안내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다시 돌산읍사무소를 찾아갔습니다.
그날 먼 길을 버스를 타고 찾아갔는데, 바쁜 업무 중에도 제 어려운 사정을 들어주시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과 필요한 절차를 하나씩 설명해 주신 돌산읍사무소 생계지원 담당자님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성함을 몰라 이렇게밖에 감사드릴 수 없는 것이 너무 아쉽습니다.
저에게는 그분들의 안내가 단순한 행정절차 설명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때 정말 막막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가진 것도 많지 않았고, 의지할 사람도 없었으며, 당장 생계를 이어갈 방법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분 한 분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이곳에 신청해 보세요.”
“이 절차를 밟아보세요.”
“이것도 알아보세요.”
라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말을 따라 하나씩 움직이다 보니, 처음으로 다시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것은 없습니다.
긴급생계지원이 결정된 것도 아니고, 실제로 지원금을 받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저는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저에게는 지금 “다시 살아볼 방법이 있다”는 희망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서류 하나를 준비하고, 다음 절차를 알아보고, 취업을 준비하고, 아내의 비자 문제도 하나씩 해결해 나가면서 다시 시작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는 정말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누군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고,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씩 알려주니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래도 한번 버텨보자.”
“나와 아내가 다시 일어서 보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를 정말 크게 느꼈습니다.
공무원이나 상담사분들에게는 하루에도 여러 번 하는 상담과 행정 안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는 그 한 번의 상담과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안내가 다시 살아갈 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거의 2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에 돌아와 이렇게 힘든 일을 겪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순간에 오히려 한국의 상담기관과 지자체에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분들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다시 한번 힘을 내보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반드시 재기에 성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언젠가 모든 어려움을 이겨내고 다시 웃을 수 있게 된다면, 그때는 꼭 다시 찾아뵙고 직접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때 저희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성함은 모르지만 꼭 찾아서 감사의 마음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이 글을 보시는 관계자분께서 당시 저를 상담해 주셨던 분들이 누구인지 확인해 주시고, 제 감사의 마음을 꼭 전달해 주셨으면 합니다.
여수여성상담센터에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끝까지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 주신 상담사분,
여수시청 사회복지과에서 긴급생계지원 절차를 차근차근 안내해 주신 담당자분,
그리고 돌산읍사무소에서 바쁜 와중에도 제 사정을 들어주시고 생계지원 절차를 안내해 주신 담당자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직 받은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저는 이미 큰 것을 받았습니다.
다시 한번 살아볼 수 있다는 희망을 받았습니다.
저와 아내는 그 희망을 놓지 않고 반드시 다시 일어서겠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정말 재기에 성공해서 웃는 얼굴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는 오늘보다 훨씬 밝은 모습으로,
“그때 정말 고마웠습니다.”
라고 직접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이 어려운 상황을 하루빨리 이겨내고, 이 나라와 여수시 그리고 제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게 다시 살아가겠습니다.
성함은 모르지만 저희 부부에게 도움의 길을 알려주신 모든 상담사분들과 공무원분들께,
진심으로, 정말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