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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설명
여수 흥국사 중수사적비는 1703년(숙종 29)에 건립된 것이다.
비문을 지은 최창대는 영의정 최석정의 아들로서 당대의 명문장이었고, 비문을 쓴 이진휴 역시 숙종대「통도사사리탑비」,「선암사중수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등 많은 작품을 남긴 명필이었다.
비문의 내용에는, 창건자 지눌과 무의자 담당(無衣子 湛堂[心幢])과의 관계, 송광사가 세워진 직후 흥국사가 창건되었다는 사실, 1560년(명종 15) 법수화상(法守和尙)에 의해 사찰 건물 1천여 칸이 증축되었다는 것, 1624년(인조 2) 계특(戒特)의 대대적인 사찰중건의 사실, 그리고 통일(通日)의 법당 개축사실 등 흥국사의 사적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수비 뒷면에는 정동호(鄭東虎)가 지은 발문을 문세욱(文世郁)이 썼는데, 그 주요 내용은 흥국사의 창사와 중건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즉, 보조국사가 흥국사를 창건한 이래 조선에 들어와 임진왜란을 겪으며 온갖 고충을 극복하며 약 470년 동안 중건한 승려들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중건과정에서 협조한 김덕항(金德恒)을 비롯한 약 140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중건과정에 도움을 준 지방관과 중앙정계의 인물, 관련 승려, 여성을 포함한 신도, 그리고 석공들의 명단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중수비의 건립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2011년 12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2호로 지정되었다.
비문을 지은 최창대는 영의정 최석정의 아들로서 당대의 명문장이었고, 비문을 쓴 이진휴 역시 숙종대「통도사사리탑비」,「선암사중수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92호)등 많은 작품을 남긴 명필이었다.
비문의 내용에는, 창건자 지눌과 무의자 담당(無衣子 湛堂[心幢])과의 관계, 송광사가 세워진 직후 흥국사가 창건되었다는 사실, 1560년(명종 15) 법수화상(法守和尙)에 의해 사찰 건물 1천여 칸이 증축되었다는 것, 1624년(인조 2) 계특(戒特)의 대대적인 사찰중건의 사실, 그리고 통일(通日)의 법당 개축사실 등 흥국사의 사적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수비 뒷면에는 정동호(鄭東虎)가 지은 발문을 문세욱(文世郁)이 썼는데, 그 주요 내용은 흥국사의 창사와 중건 과정에서 공로를 세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즉, 보조국사가 흥국사를 창건한 이래 조선에 들어와 임진왜란을 겪으며 온갖 고충을 극복하며 약 470년 동안 중건한 승려들을 높이 평가한 내용이다.
바로 이어서 중건과정에서 협조한 김덕항(金德恒)을 비롯한 약 140명의 명단이 적혀 있다.
중건과정에 도움을 준 지방관과 중앙정계의 인물, 관련 승려, 여성을 포함한 신도, 그리고 석공들의 명단까지 기록되어 있어서 당시 중수비의 건립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어 2011년 12월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12호로 지정되었다.
이용안내
개방시기/휴무일 | 개방시간 : 00시~00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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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요금 | 무료 |
주차시설 | 주차장 없음. |
유모차대여 | 없음 |
장애인시설 | 없음 |
외국어서비스 | 불가능 |
휠체어대여 | 불가능 |
반려동물 입장 | 불가능 |
부대시설/인접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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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정보 (주변2km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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