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임진왜란 당시 진주 강씨 강호회(姜虎會)씨가 황해도 해주에서 살다가 형제들과 함께 난을 피하기 위하여 한 분은 경남 하동으로 가고 강호회씨가 본 마을에 입향하게 된것이 시초이며, 입향 시초부터 16대손이 거주하고 임진난 이후 전주 이씨 등이 입향하여 현재 이르고 있으며, 당초 광양군 골약면에 속해 있다가 1973년도 7월 1일 정부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율촌면에 편입되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섬의 형태가 소가 누워 있는 모양으로 되어 있어 우도(牛島),소섬으로 불러왔다 한다. 언제부터 송도(松島)라고 불렀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노인들이 전해오는 것으로 임란 당시 일본인 장군 풍신수길이가 이끈 왜병들이 신성포에 왜성을 구축하고 전쟁을 하면서도 송도를 침범하지 않는 이유는 조선을 침략하는데 솔()을 조심하라는 풍신수길의 누나의 제언 때문이었다고 전해 왔다 그런 이유로 송도에 당시 거주하는 사람들은 지붕 및 가옥 전체를 푸른 소나무로 위장하여 전쟁 중에도 송도는 침범 당하지 않았다고 전해와 그 후 송도를 솔섬으로 부락 명이 바뀌었다고 전해 지고 있다.

세종실록(제121권 38쪽)을 보면, 의정부에서 상신하기를 병선(兵船)은 국가의 도둑을 막는 기구이 온데 배를 짓는 소나무를 사사로이 베지 못하도록 입법을 하였는데도 무식한 무리들이 집을 짓거나 사사로이 배를 만들기 위해 소나무가 거의 없어졌으니 실로 염려스럽다.

지금 연해주의 섬과, 소나무가 잘 자라는 곳을 장부에 기록하였는데 전라도 부안의 위도 ‥‥‥(중략)‥‥‥ 순천부의 송도, 장성포곳, 삼일포곳, 경도, 금오도 ‥‥‥(중략).

이상과 같은 기록으로 보아 송도는 소나무가 잘 자라는 곳이라 하여 송도로 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