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영양 천씨와 김해 김씨가 최초 입향했다는 설이 있으나 지금은 확인이 어려우며 현재는 신안 주씨가 거의 주체가 되고 있다. 1,600년경 조선 선조때에 신안 주씨인 주무명(朱武鳴)이 경남 진주에서 처음 입향하여 지금은 그 자손 13대손이 살고 있으며 그 후로 김해 김씨, 전주 이씨가 입주하여 본격적인 마을이 형성되었음.
지명유래(地名由來)
국사봉(270m)에서 내려다 보면 마을 형태가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 하여 와우동(臥牛洞)이라 부른다. 숲이 무성하고 땅이 비옥하다 하여 청대(靑垈)라 하였으며 그 후 산 좋고 물이 맑아 호산마을과 함께 청산이라 부르다 1986년 8월 1일 호산ㆍ치동을 청산 1구, 청대(내ㆍ외청)를 청산 2구로 분구하였다. 기타 세부지명으로는 목축이 번성하였다 하여 목우산등(牧牛山登)과 울창한 숲이 뱀머리 같아 사두현(蛇頭峴)이라 하였으며, 엄동설한에도 얼지 않은 석간수(石間水)가 있어 이에 온수등(溫水登)의 지명이 있다.
목우산등(牧牛山登)
외청 앞 국사봉 밑에 위치한 산등어리로 외청마을은 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고 하고 소가 풀을 뜯는 산등어리라 하여 목우등이라 한다.
삼밭골
월림마을 안쪽으로 삼베짜는 삼나무를 많이 심은 골짜기라 하여 삼밭골이라 부른다
서당골
월림마을 인근에 서당이 있었던 곳
몰맨들
내청마을 현재 주찬섭씨 잠사 인근으로 임진란때 군사들이 말을 매어 두었던 곳이라 하여 몰맨들이라 한다.
외양골
내청마을 밑으로 말들의 오물을 처리했던 장소라 한다.
온실등(溫水登)
외청 구 저수지 밑에 위치하고 산중턱에서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물이 솟아 난 웅덩이로 피부병에 효험이 있었다 한다.
앉은 바위
외청에서 구 저수지 위쪽의 골짜기로 큰 바위가 논에 있는데 성인이 15~16명 정도 앉을 수 있다.
물통골
외청마을 당산나무와 안골을 지나 봉두쪽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골짜기로서 고개 중간에 샘이 있어 물이 났다고 하여 물통골이라 한다.
사두고개(蛇頭峴)
외청에서 평촌을 넘어 가는 고개로 울창한 숲이 뱀머리와 같다하여 사두현이라 부른다.
상여바위
안골내에 있는 바위로 단층 직사각형의 바위위에 꽃봉오리 모양을 하고 있으며 바위 곁에는 꽃무늬가 새겨져 마치 상여같이 생겼다하여 상여 바위라 칭한다.
월림(月林)
내청 뒤의 들이 달 같이 생기고 수풀이 짙었다하여 월림이라 하고 대초 금령 김씨 선조가 당초에 월림에서 살다가 괴질이 번져 현재 대초로 이거 터전을 잡았다 한다. 월산 도적골에서 월림재를 넘으면 월림이 있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