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봉정
1586년경 통정대부의 벼슬을 지낸 김해 김씨 김태순(金兌淳)이 전남 장흥에서 살다가 부모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아들 김정원(金廷院)을 데리고 입향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현재는 15대손이 살고 있다.
외진
강릉 유씨 16대 유세이가 수암산에서 임진왜란 때 토굴에서 제옥 한칸에서 아들 유서교에게 대학 중용을 가르치며 자를 송림간이라 하였다. 유서교는 통정대부 안음현감을 지내고 유세이가 외진마을로 내려와 자손들이 신풍, 원신풍등으로 이거하여 살게 되었고 현재 강릉유씨 묘지가 신풍리 18번지 구영산에 자손과 함께 9기가 한 곳에 있다고 한다.
지명유래(地名由來)
원래 불무골이라 불렀다가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봉정이라 개명이 되었는데 그 연유는 국사봉 줄기 적대산에서 취대를 불면 소리가 들려 그 소리가 지나던 봉황새가 다른 새들을 데리고 와 마을 뒷편에서 쉬어 간다 하여 새 봉(鳳)자와 머무를 정(亭)자를 따서 봉정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불무골
현재 국도 17호선 취적리 저온저장창고 뒷산으로 산형이 불무형으로 김수로왕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 현재 불무골 용광로에 불이 치솟고 있는 명당지에 7대,8대조의 묘지가 있으며 그 밑에 고인돌 3기가 있는데 용광로 에서 쇠를 일구는 형국이다하여 불무골이라 전해오고 있다.
마두현(馬頭峴=일명 마두고개)
현재 봉정마을 회관이 있는 부근으로 봉정마을 뒷산이 말(馬)의 몸통이 되고 리사무소가 있는 곳이 말의머리이며 삼경 주유소 옆산이 말밥통이 되고 1929년 기사년에 철도가 나기 전에는 마두고 개밥통산(일명 당그레산) 밑에까지 바닷 물이 들어와서 말이 갈증을 느껴서 물을 마시는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로 마두현이라 칭한다. 일설로는 예전에 여수 순천간을 걸어 다니던 때 마두현에 주막이 3-4호 있었는데 말을 매 놓고 술을 마시고 투숙을 한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형국이 되어 말을 타고 다닌 여행인들의 휴식처가 되었다 한다.
외진(外津)
방조제를 막기 전에는 봉정앞 숭어등(강릉유씨 선산)까지 바닷물이 닿았다 한다 그래서 바깥에 있는 나루터라 하여 외진이라 부른다. 일설로는 신산3구 내려, 수문포에서 외진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오는 바깥으로 빠져 있는 마을이라하여 외진이라고도 전해온다.
숭어등
현 삼경주유소 길 건머편 강릉유씨 선산부근으로 숭어가 먹이를 잡아 먹으려고 바다로 내려오는 형상이라 하여 숭어등이라 부르고 있다.
가마등
일인들이 물자수송을 위해 서기 1929년에 철도를 개설하고 일본인 사업가 궁전이 제방을 을유전(1940년경)에 막았으나 염분에 의해 농사를 지을 수 가 없어 외진 강릉유씨등 7-8인이 염전을 만들어 소금을 구었다 하여 가마등이라 한다 위치는 현재 제방옆 축사(강칠언씨집 주위)인근을 말한다.
외진물
외진 마을앞의 샘으로 깊지는 않았으나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아 질병이 없었다 하고 염분이 약간있어 주민들이 장수하고 있다 한다 샘터 아래는 습이 많아 해초가 있어 고새(왕골종류)를 심어서 수확을 하여 고새로 맹석을 짜서 팔았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