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고려말 한림학사를 지낸 오흔인(吳欣仁)이 아들 형제를 데리고 여수 도호부사로 재직 중 고려가 망하고 이씨 조선이 개국되자 현 조화리 부근으로 이주하여 거주하다가 손자인 오치신(吳致臣)이 약 450년전인 서기 1440년경에 마을에 입향, 현재 오씨 집성촌으로 20대손까지 살고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처음에는 새뫼동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마을 앞에는 광양만 바다를 끼고 있고 마을 뒤로는 호암산(虎岩山)을 끼고 있어 새뫼동이라 불리우다가 언제부터인가 한자로 개칭하여 새로운 신(新)자와 뫼산(山)자를 따서 新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장터거리(원앞)
후동마을 인근으로 예전에 원님들이 여수 - 순천간을 오갈 때 말을 타고 가다 쉬어가는 간이 역으로 성생원이라는 역원이 있었고 물물교환을 하는 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개장터
마을앞 국도 17호선과 철길사이 현 대성주유소 밑 블록공장 인근으로 범이 항상 먹이가 보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범바위에서 바로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 개를 비롯한 짐승을 매매하는 시장터가 있었다.
솔밭모퉁이(계당재)
행정마을과 월산 신정마을 경계로 솔밭이 있어서 솔밭 모퉁이라 부른다.
범바위골(新大)
마을내 지석묘 남단의 골짜기로서 범이 앉아 있는 형태의 범바위가 있어 범박골이라 부른다.(호암산 밑에 있다).
산소등
마을회관 밑 해주 오씨 선조묘가 있는 동산이라 산소등(산실동)으로 부른다.
후동
신산 본 마을에서 뒤에 위치하여 후동(뒷돔)부락이라 칭함.
연화골
호암산의 범바위골에서 내려오는 계곡으로 하단부에 연꽃이 피어 있었다 하여 연화골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