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반월마을은 조선 중종때 진사 벼슬을 지낸 밀양 박씨 박웅도(朴雄道)가 1592년경 경남 밀양에서 살다가 당시 조정의 당쟁으로 파벌싸움이 못마땅하게 여겨 조용한 곳을 찾아 여자만 쪽으로 오다가 안개가 자욱이 낀 이 지역을 보고 정착하게 되어 마을을 형성하게 되었으며, 내리마을은 진원 박씨의 형의(馨義)란 분이 학자로 여러 지역을 다니며 학문을
지명유래(地名由來)
반월
마을뒤 안개가 낄 때 앞바다에서 보면 반달같이 보인다 하여 운중반월(雲中半月)이라고도 하였으며 바닷물이 만수가 되었을 때 지형이 반달모양 같다 하여 반월이라 하였고
내리
원래는 마을 형세가 고동같이 생겼다 하여 나리(고동螺 마을里)라 하였으나 마을 남편에는 반월이 있고 서편에는 봉전이 있어 골 깊숙히 안에 있다 하여 내리(內里)라 부르게 됨.
정골
현재 성재근씨 집옆으로 예전에 바닷가 염전이 있어 가마솥을 걸어 놓고 소금을 굽어낸 골이다하여 정골이라 부른다.
텃골
마을 좌측에 있는 골은 옛적에 300여호가 살았으며 터 기,마을 동(基洞)이라하고 현재 신풍 학서의 연안 차씨 제각을 짓고 있는 골짜기다.
샘골(생골)
내리 마을내에 있는 골로 寒泉水가 솟아 났다 하여 생곡(生谷)이라 하고 일년내내 바위위로 물이 흘러 내리마을 식수로 이용하였다.
강정지
내리마을 동편 입구로 옛적에 큰 정자가 있었고 그 정자나무가 산을 가려 이웃 삼산마을 쪽까지 덮을 정도 컸다 하여 강정자(康亭子)라 불렀고 지금까지 강정지라 한다.
갓점재
내리마을 북편에 있는 재로써 텃골에서 입촌(笠村)으로 넘어 다녔던 재로 내리마을에서 제일 가에 있는 재라 하여 갓점재라 부른다.
본들
반월마을 앞 들로 논에 물을 대어 놓아도 하룻밤만 지나면 물이 보글보글 없어진다 하여 본들이라 부른다.
호안도로
반월에서 내리마을 정골을 지나 해안을 끼고 광암저수지까지 생긴 일주도로로 여자만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농로기능을 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