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1595년 충주 지씨인 지달사가 임진왜란 당시 한양에서 난을 피하여 아들 삼형제를 데리고 입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그후 밀양 박씨가 입주하였으며 1975년에 여천 산단건설로 일부 이천 서씨가 이주하였고, 지금은 충주 지씨가 주 성씨로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일설에 의하면 충주 지씨가 들어오기 전에 해주 오씨가 살았다는 말도 있으나 현재는 그 후손이 한 사람도 살고 있지 않아 확인할 수 없다.
지명유래(地名由來)
옛날 교통이 불편하던 때 마을앞으로 여수-순천간을 잇는 길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도보로 통행하다 순천과 여수중간지점에 위치하였다 하여 가운데 중(中)자를 따서 중산(中山)이라 칭하게 되었음.
월옛날 순천 - 여수간 보도 도로선평(月平)
- 순천 - 왕바우재 - 중산 - 수암산 - 여수
- 순천 - 청산 - 수암산 - 소라 봉두 갬실 - 여수
- 순천 - 중산 - 소라 달천 - 화양 - 여수
사창(社倉)터
조선조때(1600여년대) 설치된 곡식저장을 위한 창고가 있었던 곳으로 춘궁기에 곡물을 대여하고 가을에 이식과 함께 받아들이는 구호(救護)제도로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치 않으나 지금은 민가가 세체(박홍태 씨집 주위)있고 그 주위에 500여평의 밭으로 되있으며 사창터라 부른다.
모후당산터(모이당산)
마을뒤 태봉산 줄기 하단에의 사창터 옆에 연이은 모후당산터가 150여평의 마을 공유지가 있다. 그곳에 70여년생 팽나무가 있는 곳으로 여름철 주민들이 모여 회의도 하고 놀았다 하여 모이당산이라 함.
불무등
충주지씨 제각부근으로 대장간이 있어 쇠를 달구는 불무의 이름을 따서 불무등이라 하고 불무바위가 있어 사람이 바위를 밟으면 불무소리가 난다고 한다.
변덕(삔덕)
마을회관 인근으로 예전에 조그마한 야산이었는데 집을 지으면서 마을이 형성되어 지대가 좀 높은 곳이라 하여 변덕이라 부른다.
청룡등
마을 동쪽으로 구. 중앙초등학교에서 모이 당산쪽의 능선으로 하단부는 밭으로 이용되고 있고 상단부로는 마을 뒤 소뿔바위(소의 뿔과 같이 생긴 바위)까지를 청룡등이라 부른다.
솔밭등
전신전화분국에서 마을 회관쪽으로 솔나무가 많았다하여 솔밭등으로 부른다.
조부장터
수암산 투구바위 아래 위치해 있어 옛날에 조그마한 옹기장이 섰다 하여 조부장터(좁는 장터)라 부른다.
물방골
조부장터에서 조금 내려오면 물방골짜기가 있다. 물을 이용한 물 방앗간이 있었다하여 물방골이라 부른다.
조목
물방골짜기를 조금 내려오면 조목이 있다. 지금은 저수지가 있는데 66년도에 착공하여 68년도에 준공하였다. 목이 좁아서 조목이라 불렀다.
남산굴
조목에서 마을쪽으로 남산굴이 있다. 남생이 모양으로 생긴 바위가 있는데 그 밑에 조그마한 굴이 있어 남산굴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