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서기 1780년경 충주 지씨가 충청도 충주에서 동학난을 피하여 자녀를 데리고 입향한 것이 시초이며 일설에 의하면 충주 지씨가 입향하기 전에 순창 조씨가 살았다고 하나 확인할 길이 없음. 그 후 현 본 면 소재지가 생활중심지가 되어 각지에서 여러 사람들이 이주하여 농사와 도소매ㆍ상업등 소도시로 형성되어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동교라는 말은 다리(교량)이 있다는 뜻이다. 1889년 규모가 큰 교량이 우리지방에서 처음으로 가설되었다. 「湖南 麗水邑誌」에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김동운(金東韻 : 1889.2 ~ 1980. 7)이 창고를 헐어 교량을 가설하여 백성들이 안심하고 강을 건너갈 수 있게 하였다. 교량의 위치를 「在郡北五十里」라고 하고 수원(水源)은 금산에서 내려와 청대천과 합류하고 동해로 들어간다는 짧은 글이 있다. 이 때부터 이 마을을 동교라 했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 때 좌수영에서 순천현으로 길가던 스님 한 사람이 지금의 율촌천 사향교 근처를 지나다 건너편(현재 사항부락)은 모래 언덕이고 본 마을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것이라 하여 동산포(東山浦)라 칭하였다가 한일합병 후 일본인이 철도와 도로를 개설, 동쪽 다리안에 위치한 부락이라 하여 동교(東橋)라 하였으며 오른쪽 마을은 바닷물이 들어와 좁고 긴 하천을 만들었으며 그 주변에 마을이 생성되었다 하여 종개(좁은 개천) 長川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