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유래(由來)

약 400여년전 전주 최씨 최경복이 전남 곡성읍 대평리에서 살다가 단종애사에 가담한 이유로 제주도로 유배를 당하여 기한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복잡한 세상사를 피하기 위해 은둔지를 찾다가 이곳에서 정착한 이후 마을이 생성되었으며, 그 후 마을 앞산에는 1978년 8월 여수 신월동에서 한국화약공장 설치관계로 집단 이주한 주민이 입주 덕산마을을 형성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명유래(地名由來)

마을의 형세가 소가 누워 있는 모양이라 하여 와우혈(臥牛穴)이라 하였는데 그후 소가 잘 번식하면서 큰 풀밭이 있었다 하여 대초(大草)라 칭하게 되었으며 마을 뒷 쪽산은 소를 매어 놓은 말뚝 같다 하여 솔매산(소를 메는 산)이라 하고 월산 2구 죽현(竹峴)입구가 소구시(소 밥그릇)같다 하여 지금도 구시머리라고 불리운다.

와우혈

태봉산에서 대초마을로 흘러 내려온 혈이 와우혈인데 현재 국도 17호선과 소재지를 통과하고 있다.

도적골

덕산마을과 월평사이의 중간부분의 산 하단부 골짜기로 현재 축사가 지어져 있고 옛날에는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외지기 때문에 도둑을 많이 만나 도둑골이라 부른다.

마산(말산)

대초마을 앞 건너편 산으로 산의 형태가 말과 같이 생겼다 하여 馬山 또는 말산이라 부른다.(대초에서 청대 월림으로 넘어가는 도로가 말꼬리부분이라 전해온다)

월산(月山)

덕산 뒷산을 월산이라 부른데 산의 모양이 달(둥근달)같이 생겼다하여 월산이라 부른다.

마을 공동샘

현재 국도 17호선과 동양 임대아파트 개발로 인하여 도로가 확장되면서 묻혀 유실되었는데 옛날에는 엄청난 가뭄에도 우리고장에 산수리 수전샘과 월산 대초의 본 샘 2개만 마르지 않았다 한다.

덕산

1977년에 새롭게 형성된 마을로 원래 여수시 신월동에서 1976년 한국화약 공장이 들어서면서 14세대 42명이 집단이주하여 산기슭에 터를 닦았다 마을이 정착하자 양계사업 하나로 지금까지 생활을 영위하고 있으며 덕산마을은 우리고장의 양계시범마을로서 손꼽히는 마을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