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섬 학살지
- 날짜
- 2021.10.13
- 조회수
- 1265
- 등록자
- 관리자
지역구분 (행정시) | 경남 남해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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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 애기섬 학살지
- 위치: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산 444
1949년 6월 5일부터 이승만 정부는 전국적으로 좌익 성향의 사람들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켰는데, 여수의 '보도연맹'원들은 대부분 여순사건 관련자들이었다. 보도연맹은 좌익활동을 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든 조직으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었으나 통상 보도연맹으로 불렸다. 1949년 말까지 가입자는 전국적으로 30만 명에 달했으며, 결성목적은 좌익세력을 통제, 회유하려는 것이었다. 활동목표는 대한민국 정부의 절대 지지, 북한괴뢰정권 절대 반대와 타도,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등의 강령으로 요약된다. 강령에 따라 보도연맹원들은 전향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좌익분자들을 색출하여 밀고하고 자수를 권유하는 등 반공활동을 하였다.
1950년 6·25한국전쟁이 발발한 초기, 서울을 제외한 전국, 특히 이천, 안성, 평택 이남 지역에서는 정부·경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이들 보도연맹원에 대한 무차별 검속 및 집단총살을 자행하였다. 이로 인해 북한의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일어났던 좌익세력에 의한 보복학살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여수의 경우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여수를 비롯한 시외곽 지역인 율촌, 소라, 삼일, 쌍봉의 보도연맹원들을 여수경찰서 무덕관에 집결시킨 후에 경남 남해도 남단에 있는 애기섬으로 끌고 가 총살한 후 수장하였으며, 남면, 화정면, 삼산면의 섬 지역은 주변 무인도나 바다에서 처형 후 수장하였다. 당시 특무대 관계자의 증언에 의하면 애기섬 희생자는 약 120명 이내로 추정된다.
- 위치: 경남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산 444
1949년 6월 5일부터 이승만 정부는 전국적으로 좌익 성향의 사람들을 '국민보도연맹'에 가입시켰는데, 여수의 '보도연맹'원들은 대부분 여순사건 관련자들이었다. 보도연맹은 좌익활동을 하다가 전향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만든 조직으로, 정식명칭은 국민보도연맹이었으나 통상 보도연맹으로 불렸다. 1949년 말까지 가입자는 전국적으로 30만 명에 달했으며, 결성목적은 좌익세력을 통제, 회유하려는 것이었다. 활동목표는 대한민국 정부의 절대 지지, 북한괴뢰정권 절대 반대와 타도, 공산주의 사상 배격·분쇄 등의 강령으로 요약된다. 강령에 따라 보도연맹원들은 전향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좌익분자들을 색출하여 밀고하고 자수를 권유하는 등 반공활동을 하였다.
1950년 6·25한국전쟁이 발발한 초기, 서울을 제외한 전국, 특히 이천, 안성, 평택 이남 지역에서는 정부·경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이들 보도연맹원에 대한 무차별 검속 및 집단총살을 자행하였다. 이로 인해 북한의 인민군 점령지역에서 일어났던 좌익세력에 의한 보복학살의 주된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여수의 경우도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여수를 비롯한 시외곽 지역인 율촌, 소라, 삼일, 쌍봉의 보도연맹원들을 여수경찰서 무덕관에 집결시킨 후에 경남 남해도 남단에 있는 애기섬으로 끌고 가 총살한 후 수장하였으며, 남면, 화정면, 삼산면의 섬 지역은 주변 무인도나 바다에서 처형 후 수장하였다. 당시 특무대 관계자의 증언에 의하면 애기섬 희생자는 약 120명 이내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