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70주년 특집 5부작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3부
- 날짜
- 2021.10.13 14:02
- 조회수
- 285
- 등록자
- 윤성현
1948.10.19 가려진 시간, 고여있는 눈물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 MBC 이 프로그램은 15세 미만의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한 주제, 폭력성, 선정성을 포함하고 있어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합니다.
3부 그것은 전쟁이었다
(전남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아랫자락에 자리한 산동, 여순사건 당시 이곳은 민간인 피해가 극에 달했다. "그세상 안살아본 사람은 몰라 밥도 학교 마당에다 솥단지 요상하게 걸어서 해먹고.. 거지도 그런거지가 없지.. " 아이고~ 그런세상 돌아오면 못살아"
이윤임 전남구례군 산동면 - 지금 젊은사람들은 (그런세상에선) 못살것이네
홍순례 여순사건 당시 9세 - (젊은사람들에게 얘기하면) 거짓말인줄 알아
조순남 여순사건 당시 8세 - 우리엄마는 총소리가 나니까 뒷마당에다 숨기느라고 엄마 엄마 죽어! 얼른와 얼른와!
(그러니까 엄마가)가만있어라 먹고살아야지.. 그러다가 맞아죽은 사람이 있잖아
주철희 역사연구자 - 여순사건 하면 여수와 순천지역을 많이 생각하는데 전라남도 전체 22개지역, 전라북도 남원, 순창, 임실 등 경상남도 남해, 하동, 거창.. 총 37개 지역에 확산되었고 피해가 있었습니다. 한번도 전체 37개 지역에 대한 전수조사가 없다보니까 피해자를 대충 전남동부지역으로만 한정해서 피해자를 측정하고 있고 특히 명칭에 여순이 들어가다 보니까 여수,순천에 국한된 사건으로 이해하는 인식이 있습니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여순사건은) 전국적인 파급력을 지닌 사건이거든요 여수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한마디로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여순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은 한국현대사를 바로세우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제대로 세우게 되는 겁니다.
여수지역에서 밀려난 반군들의 주요 활동지가 된 구례산골마을 여순사건은 평화로웠든 마을을 전쟁터로 만들었고 순박한 산골마을 사람들의 삶에 씻기 힘든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윤재 어르신 여순사건 당시 19세 - 밤만되면 반군들이 (마을로 내려와서) 밥을 해 달라고 하는데 밥을 안해주면 죽이니까 밥을 해주면 (반군에게)밥을 해줬다고 (낮에)진압군이 잡으러와요 그러니까 (마을사람들이)양쪽에 끼여서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여기서요 (여수사건당시) 광주에서 온 사람이 (마을위쪽에)집을 짓고 산동면 유지급들을 (자기집으로)오라고 해서 공산주의 물을 들였어요, 공산주의 물을 (결국 그 사람들이 진압군에게) 잡혀가서 죽었어요
한홍구 역사학자/성공회대교수 - 빨갱이를 한 하늘아래 살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봤고 (빨갱이라고 하면) 살인도 용납해주는 면죄부가 됩니다. 내가 죽인것은 '사람'이 아니라 '빨갱이'라는 거예요 빨갱이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 절대적인 권력으로 작용하게 되는거죠
이윤재 어르신 여순사건 당시 19세 - 우리 형님이 (공산주의)꾐에 빠져서 (친형이 공산주의 모임에)다녔다고 해서 같은 형제간이니 물이 들었을거라고 (나를)잡아다가 고문을 했어요 고문받은것은 말도 못해요 사람을 묶어놓고 몽둥이로 두들겨요 (그것도 모자라)주전자에다 고춧가루 물을 타서 코에다 들이붓고.. 그런 고문을 당했어요
고문을 당하던 열아홉 소년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고문받은 것은)말도 못해요, 말할수도 없어 공산당이라 죽인다고 하기에.. 나이 19살 먹은 놈이 뭘 알겠느냐 공산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내가 뭘 아냐 왜 생사람을 잡아다 죽이려는 거냐.. 그래서 (겨우)살아난 거예요
(여순사건 당시에는) 경찰이라고 하면 사람을 죽여도.. 그때는 그렇게 사람을 허망하게 죽였어요... 그때는 죄가 있어서 죽은것이 아니라.. 죄가없어도 무조건 잡아다가 두들겨패면 (본인이)안한일도 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엄청죽었어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948년 제허헌법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헌법정신이다. 적법한 사법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는 제헌헌법부터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당시 죽음의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즉결처분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 국가조직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조직에 불과 합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할 책무가 있는거죠 헌법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순사건)당시에는 헌법질서를 국가기관이 오히려 위반했다는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철희 역사연구자 - 빨치산(반군)들이 내려와서 밥을 해달라고 그러죠 (마을사람들 입장에서는)밥을 안해줄수가 없겠죠 그래서 밥을 해주면 부역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마을사람들을)총살시킵니다. 그리고 아들이 빨치산(반군)을 따라 입산을 했어요 아들이 입산했다고 해서 아버지가 죽어야할 이유는 없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지리산 중심에서는 대살(당사자를 대신해 죽음)이 아주 많습니다. 그다음에 지리산 같은 경우는 전남 구례 뿐 아니라 경남 산청, 거창도 아주 피해가 많았는데요 이런 지역들은 토벌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이 지역을 전부 통행금지를 시켜요 먹고 살수 있는게 없었죠 그래서 당시 신문에 어떤기사가 나왔냐면요 구례 산동면의 한 목사가 이승만 정부에 탄원서를 씁니다. 뭐라고 탄원서를 쓰냐 '먹고살것이 없습니다''산동주민들은 쥐를 잡아먹고 살고 있습니다''국가가 왜 이렇게 해야 됩니까' 이렇게 해서 한 목사가 탄원서를 씁니다. 그 정도로 구례지역은(여순사건 발생 후) 아주 늦은 시기까지 엄청난 피해가 있었던 지역입니다.
빨간 산수유 열매맺는 이 계절만 되면 당시 처참했던 산골마을 풍경이 떠오른다는 홍순례 어머니 - 학교 운동장에 (마을사람들이)전부 덕석을 치고 거지처럼 살았어요 (근처에) 방을 얻어가지고 한집씩 한집씩 (운동장생활을)벗어났어요 그렇게 고생을 했어요 그때 안죽을 사람이 많이 죽었다그말이죠 (진압군)군인대장이 우리마을 뒤에서 죽었는데 우리마을 사람이 죽였다고..(마을)사람들을 전부 학교 마당으로 불러서 찬물을 착착 부었어요 누가 그랬냐고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자리에서 쓰러지셨어요
(할아버지가) 밥한그릇만 먹고 죽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퍽 쓰러지셔서(그자리에서)돌아가셨어요 우리 어머니는 내 동생을 안고 있어서 물을 안맞고, 우리아버지만 (물을)맞았어요 동지섣달 이었어요 어릴때라도 그 기억이 생생해요 안잊혀져.. 징글징글하죠.. 그런세상 또 온다면 (그때는)못살죠..
여순사건에 대한 의견과 피해사례 제보, 본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소감을 보내주시면 향후 제작에 반영하겠습니다. 여수 mbc홈페이지 시청자의견 게시판 / 여수mbc 페이스북으로 많은 참여 바랍니다.
산동애가 - 여순사건 당시 19살이던 구례 백부전(백순례)이 가문을 잇기위해 막내오빠를 대신해 처형장으로 끌려가며 불렀다고 전해지는 노래
잘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멍든다리 절며 절며 달비머리 풀어얹고 원한의 넋이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없이 쓰러졌네
1948.10.19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가려진시간, 고여있는 눈물 3부 그것은 전쟁이었다.
제작지원 gs칼텍스, LG화학, LOTTE ADVANCED MATERIALS
기획 김지홍 / 구성 이혜련, 정안형 / 카메라 송정혁, 최재훈, 신대호 / 오디오 양원석, 임솔빛, 장대은
운전 김득중, 옥지수 / 음악 이수환 / 사진 고 이경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자료협조 제주MBC
타이틀그래픽 최윤정 / 행정 문은호, 신진영, 이가영
연출 이동신
시각장애인을 위한 자막방송, MBC 이 프로그램은 15세 미만의 청소년이 시청하기에 부적절한 주제, 폭력성, 선정성을 포함하고 있어 보호자의 시청지도가 필요합니다.
3부 그것은 전쟁이었다
(전남구례군 산동면) 지리산아랫자락에 자리한 산동, 여순사건 당시 이곳은 민간인 피해가 극에 달했다. "그세상 안살아본 사람은 몰라 밥도 학교 마당에다 솥단지 요상하게 걸어서 해먹고.. 거지도 그런거지가 없지.. " 아이고~ 그런세상 돌아오면 못살아"
이윤임 전남구례군 산동면 - 지금 젊은사람들은 (그런세상에선) 못살것이네
홍순례 여순사건 당시 9세 - (젊은사람들에게 얘기하면) 거짓말인줄 알아
조순남 여순사건 당시 8세 - 우리엄마는 총소리가 나니까 뒷마당에다 숨기느라고 엄마 엄마 죽어! 얼른와 얼른와!
(그러니까 엄마가)가만있어라 먹고살아야지.. 그러다가 맞아죽은 사람이 있잖아
주철희 역사연구자 - 여순사건 하면 여수와 순천지역을 많이 생각하는데 전라남도 전체 22개지역, 전라북도 남원, 순창, 임실 등 경상남도 남해, 하동, 거창.. 총 37개 지역에 확산되었고 피해가 있었습니다. 한번도 전체 37개 지역에 대한 전수조사가 없다보니까 피해자를 대충 전남동부지역으로만 한정해서 피해자를 측정하고 있고 특히 명칭에 여순이 들어가다 보니까 여수,순천에 국한된 사건으로 이해하는 인식이 있습니다.
김득중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 (여순사건은) 전국적인 파급력을 지닌 사건이거든요 여수에 한정되는 문제가 아니라 한국 현대사에 있어서 한마디로 큰 획을 그은 사건입니다. 여순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은 한국현대사를 바로세우는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를 제대로 세우게 되는 겁니다.
여수지역에서 밀려난 반군들의 주요 활동지가 된 구례산골마을 여순사건은 평화로웠든 마을을 전쟁터로 만들었고 순박한 산골마을 사람들의 삶에 씻기 힘든 상처를 남겼습니다.
이윤재 어르신 여순사건 당시 19세 - 밤만되면 반군들이 (마을로 내려와서) 밥을 해 달라고 하는데 밥을 안해주면 죽이니까 밥을 해주면 (반군에게)밥을 해줬다고 (낮에)진압군이 잡으러와요 그러니까 (마을사람들이)양쪽에 끼여서 사람이 많이 죽었어요, 여기서요 (여수사건당시) 광주에서 온 사람이 (마을위쪽에)집을 짓고 산동면 유지급들을 (자기집으로)오라고 해서 공산주의 물을 들였어요, 공산주의 물을 (결국 그 사람들이 진압군에게) 잡혀가서 죽었어요
한홍구 역사학자/성공회대교수 - 빨갱이를 한 하늘아래 살 수 없는 그런 존재로 봤고 (빨갱이라고 하면) 살인도 용납해주는 면죄부가 됩니다. 내가 죽인것은 '사람'이 아니라 '빨갱이'라는 거예요 빨갱이로 낙인을 찍는다는 것이 절대적인 권력으로 작용하게 되는거죠
이윤재 어르신 여순사건 당시 19세 - 우리 형님이 (공산주의)꾐에 빠져서 (친형이 공산주의 모임에)다녔다고 해서 같은 형제간이니 물이 들었을거라고 (나를)잡아다가 고문을 했어요 고문받은것은 말도 못해요 사람을 묶어놓고 몽둥이로 두들겨요 (그것도 모자라)주전자에다 고춧가루 물을 타서 코에다 들이붓고.. 그런 고문을 당했어요
고문을 당하던 열아홉 소년은 자신이 왜 죽어야 하는지 궁금했습니다. (고문받은 것은)말도 못해요, 말할수도 없어 공산당이라 죽인다고 하기에.. 나이 19살 먹은 놈이 뭘 알겠느냐 공산주의가 뭔지.. 민주주의가 뭔지.. 내가 뭘 아냐 왜 생사람을 잡아다 죽이려는 거냐.. 그래서 (겨우)살아난 거예요
(여순사건 당시에는) 경찰이라고 하면 사람을 죽여도.. 그때는 그렇게 사람을 허망하게 죽였어요... 그때는 죄가 있어서 죽은것이 아니라.. 죄가없어도 무조건 잡아다가 두들겨패면 (본인이)안한일도 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람이 엄청죽었어요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1948년 제허헌법부터 현재까지 이어온 헌법정신이다. 적법한 사법절차에 의해 재판을 받을 권리는 제헌헌법부터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이다. 그러나 당시 죽음의 이유도 알지 못한 채 즉결처분에 처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 국가조직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을 행사하는 조직에 불과 합니다. 국가는 국민을 보호해야할 책무가 있는거죠 헌법이 그런 내용을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순사건)당시에는 헌법질서를 국가기관이 오히려 위반했다는것이 더 심각한 문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주철희 역사연구자 - 빨치산(반군)들이 내려와서 밥을 해달라고 그러죠 (마을사람들 입장에서는)밥을 안해줄수가 없겠죠 그래서 밥을 해주면 부역자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마을사람들을)총살시킵니다. 그리고 아들이 빨치산(반군)을 따라 입산을 했어요 아들이 입산했다고 해서 아버지가 죽어야할 이유는 없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지리산 중심에서는 대살(당사자를 대신해 죽음)이 아주 많습니다. 그다음에 지리산 같은 경우는 전남 구례 뿐 아니라 경남 산청, 거창도 아주 피해가 많았는데요 이런 지역들은 토벌을 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이 지역을 전부 통행금지를 시켜요 먹고 살수 있는게 없었죠 그래서 당시 신문에 어떤기사가 나왔냐면요 구례 산동면의 한 목사가 이승만 정부에 탄원서를 씁니다. 뭐라고 탄원서를 쓰냐 '먹고살것이 없습니다''산동주민들은 쥐를 잡아먹고 살고 있습니다''국가가 왜 이렇게 해야 됩니까' 이렇게 해서 한 목사가 탄원서를 씁니다. 그 정도로 구례지역은(여순사건 발생 후) 아주 늦은 시기까지 엄청난 피해가 있었던 지역입니다.
빨간 산수유 열매맺는 이 계절만 되면 당시 처참했던 산골마을 풍경이 떠오른다는 홍순례 어머니 - 학교 운동장에 (마을사람들이)전부 덕석을 치고 거지처럼 살았어요 (근처에) 방을 얻어가지고 한집씩 한집씩 (운동장생활을)벗어났어요 그렇게 고생을 했어요 그때 안죽을 사람이 많이 죽었다그말이죠 (진압군)군인대장이 우리마을 뒤에서 죽었는데 우리마을 사람이 죽였다고..(마을)사람들을 전부 학교 마당으로 불러서 찬물을 착착 부었어요 누가 그랬냐고 그래서 할아버지는 그자리에서 쓰러지셨어요
(할아버지가) 밥한그릇만 먹고 죽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퍽 쓰러지셔서(그자리에서)돌아가셨어요 우리 어머니는 내 동생을 안고 있어서 물을 안맞고, 우리아버지만 (물을)맞았어요 동지섣달 이었어요 어릴때라도 그 기억이 생생해요 안잊혀져.. 징글징글하죠.. 그런세상 또 온다면 (그때는)못살죠..
여순사건에 대한 의견과 피해사례 제보, 본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소감을 보내주시면 향후 제작에 반영하겠습니다. 여수 mbc홈페이지 시청자의견 게시판 / 여수mbc 페이스북으로 많은 참여 바랍니다.
산동애가 - 여순사건 당시 19살이던 구례 백부전(백순례)이 가문을 잇기위해 막내오빠를 대신해 처형장으로 끌려가며 불렀다고 전해지는 노래
잘있거라 산동아 너를 두고 나는 간다 열아홉 꽃봉오리 피어보지 못하고 까마귀 우는 곳을 멍든다리 절며 절며 달비머리 풀어얹고 원한의 넋이되어 노고단 골짜기에 이름없이 쓰러졌네
1948.10.19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가려진시간, 고여있는 눈물 3부 그것은 전쟁이었다.
제작지원 gs칼텍스, LG화학, LOTTE ADVANCED MATERIALS
기획 김지홍 / 구성 이혜련, 정안형 / 카메라 송정혁, 최재훈, 신대호 / 오디오 양원석, 임솔빛, 장대은
운전 김득중, 옥지수 / 음악 이수환 / 사진 고 이경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자료협조 제주MBC
타이틀그래픽 최윤정 / 행정 문은호, 신진영, 이가영
연출 이동신
https://www.youtube.com/watch?v=hOdzl48FMoA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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