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연대주둔지
- 날짜
- 2021.10.13
- 조회수
- 1471
- 등록자
- 관리자
지역구분 (행정시) | 여수시 |
---|---|
주소 |
□ 14연대 주둔지
- 위치: 여수시 신월동 805
1948년 여순사건을 일으켰던 육군 제14연대 병영이 있었던 곳이다. 원래 봉양, 물기미, 신근정이란 3곳의 마을이 있었으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 해군이 가막만과 구봉산 뒷산의 지형을 천연 요새로 삼아 해군 202부대와 군수품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전남동부지역의 민간인과 학생들을 동원하여 근로보국대라 하고 2개월씩 교대로 일을 시켜 해방이 될 무렵에는 90%가까운 공정을 보이고 있을 때 일제의 패망으로 빈 막사와 격납고만 남아있던 곳을 미군정이 인수하게 되었다.
1948년 5월 4일, 국방경비대는 광주 4연대에서 차출된 안영길 대위 이하 1개 대대병력이 14연대를 창설하여 초대 연대장에 이영순 소령이 부임하였다. 이어 김익렬 중령, 오동기 소령을 거쳐 박승훈 중령이 연대장이던 1948년 10월 19일 제주출병 명령에 지창수 상사 등이 거부하여 장교들을 사살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사건 후 1950년 7월 25일, 군대가 완전 철수하고 1952년 12월 31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제15육군병원이 설치되었으며, 1962년 6월 26일부터 1976년 2월 20일까지는 보사부 결핵환자 자활촌으로 지정되었다.
1976년 7월 23일부터 현재까지 한화여수공장이 입주하여 가동 중인데, 옛부터 평화로운 원주민 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일본과 미군에 이어 한국군의 병영지로 쓰이다가 급기야는 시민의 안전을 볼모로 하는 화약공장이 들어서기까지 민족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을 간직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다.
- 위치: 여수시 신월동 805
1948년 여순사건을 일으켰던 육군 제14연대 병영이 있었던 곳이다. 원래 봉양, 물기미, 신근정이란 3곳의 마을이 있었으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2년 일본 해군이 가막만과 구봉산 뒷산의 지형을 천연 요새로 삼아 해군 202부대와 군수품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주민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전남동부지역의 민간인과 학생들을 동원하여 근로보국대라 하고 2개월씩 교대로 일을 시켜 해방이 될 무렵에는 90%가까운 공정을 보이고 있을 때 일제의 패망으로 빈 막사와 격납고만 남아있던 곳을 미군정이 인수하게 되었다.
1948년 5월 4일, 국방경비대는 광주 4연대에서 차출된 안영길 대위 이하 1개 대대병력이 14연대를 창설하여 초대 연대장에 이영순 소령이 부임하였다. 이어 김익렬 중령, 오동기 소령을 거쳐 박승훈 중령이 연대장이던 1948년 10월 19일 제주출병 명령에 지창수 상사 등이 거부하여 장교들을 사살하면서 사건이 시작되었다.
사건 후 1950년 7월 25일, 군대가 완전 철수하고 1952년 12월 31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제15육군병원이 설치되었으며, 1962년 6월 26일부터 1976년 2월 20일까지는 보사부 결핵환자 자활촌으로 지정되었다.
1976년 7월 23일부터 현재까지 한화여수공장이 입주하여 가동 중인데, 옛부터 평화로운 원주민 마을을 강제로 이주시킨 후 일본과 미군에 이어 한국군의 병영지로 쓰이다가 급기야는 시민의 안전을 볼모로 하는 화약공장이 들어서기까지 민족현대사의 아픔과 질곡을 간직하고 있는 비극의 현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