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리 학살지
- 날짜
- 2021.10.13
- 조회수
- 1445
- 등록자
- 관리자
지역구분 (행정시) | 여수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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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 |
□ 만성리 학살지(여순사건 희생자 위령비)
- 위치: 여수시 만흥동 149-6
만성리 학살지는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국민학교 수용자 중 수백여 명의 민간인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집단학살한 곳이다. 1948년 11월 초순경부터 부역혐의자들 일부를 이곳에서 학살하고 협곡과 같은 골짜기 속으로 던져 넣은 후 흙, 모래와 돌로 암매장하였다. 여수를 진압한 진압군은 경찰과 함께 종산국민학교에 주둔하면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포의 부역혐의자 색출을 진행하였다. 사건 당시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을 보면 1948년 11월 13~14일 양일간 제3차 고등군법회의가 열려 재판 회부자 458명 중 사형언도자가 102명(제3차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이 102명이라는 기록과 80명이라는 기록이 있어 명확하지 않다)이나 되었는데, 이곳에서의 희생자가 그때의 사형언도자 들이었는지는 공개된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이후에도 종산국민학교에서 포승줄에 끌려온 사람들을 이 골짜기에서 계속 학살하여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가득하였다 한다. 그래서 시내를 가고자 했던 만성, 오천 주민들은 공포의 땅이 된 이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먼 거리를 돌아다니기까지 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사건이 지난 후 이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돌을 계곡에 던져 넣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속이 한동안 오래 지속되어 돌탑무덤이 솟아오르기도 하였고, 현재는 2009년에 건립된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 위치: 여수시 만흥동 149-6
만성리 학살지는 부역혐의자로 잡혀있던 종산국민학교 수용자 중 수백여 명의 민간인들을 이곳으로 끌고 와 집단학살한 곳이다. 1948년 11월 초순경부터 부역혐의자들 일부를 이곳에서 학살하고 협곡과 같은 골짜기 속으로 던져 넣은 후 흙, 모래와 돌로 암매장하였다. 여수를 진압한 진압군은 경찰과 함께 종산국민학교에 주둔하면서 민간인을 대상으로 공포의 부역혐의자 색출을 진행하였다. 사건 당시의 증언을 토대로 한 기록을 보면 1948년 11월 13~14일 양일간 제3차 고등군법회의가 열려 재판 회부자 458명 중 사형언도자가 102명(제3차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사람이 102명이라는 기록과 80명이라는 기록이 있어 명확하지 않다)이나 되었는데, 이곳에서의 희생자가 그때의 사형언도자 들이었는지는 공개된 기록이 없어 알 수가 없다.
이후에도 종산국민학교에서 포승줄에 끌려온 사람들을 이 골짜기에서 계속 학살하여 총소리와 비명소리가 가득하였다 한다. 그래서 시내를 가고자 했던 만성, 오천 주민들은 공포의 땅이 된 이 지름길을 두고 일부러 먼 거리를 돌아다니기까지 했다는 증언들이 이어졌다.
사건이 지난 후 이 골짜기를 지나는 사람들은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위해 작은 돌을 계곡에 던져 넣어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풍속이 한동안 오래 지속되어 돌탑무덤이 솟아오르기도 하였고, 현재는 2009년에 건립된 여순사건 희생자위령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