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 70주년 특집 5부작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2부
- 날짜
- 2021.10.13 13:32
- 조회수
- 622
- 등록자
- 윤성현
0:05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있는 눈물'
0:12
장홍석: "우리마을은 그날이후로 추석명절이 없어졌습니다."
0:22
2부 추석없는 마을
0:32
화면: 전남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전경
여순사건 당시 2세 장홍석: 1949년도 그때는 농사만 알고 그랬어요. 어니 형제간처럼 아주 오순도순 살기좋은 마을이였어요."
0:40
장홍석: "그러던 차에 여순사건이 발발하고 밤이면 반란군들이 와서(산에서 내려와 집안에) 식량이 있으면 있는대로 다 털어가 버립니다."
0:50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김득중: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에 시작되었고, 여수가 10월 27일날 진압군에 의해서 완전히 점령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10월 27일날 여순사건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1:08
김득중: "여순사건은 (발발이듬해인)1949년 내내 지속이 됩니다. 왜냐하면 14연대 군인들이 지리산 등지로 입산 했고 거기서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서 진압군은 토벌작전을 계속 진행하게 됩니다."
1:27
화면: 신전마을 비극의 밤 1949년 추석 이튿날
자막: 빨치산(반군)이 데려온 부상당한 소년을 챙겼다는 이유로 순천 신전마을 주민들은 이자리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1:43
장홍석: "저는 그때 3살 먹은는데 형수등에 업혀가지고 죄인 줄로 앉혀는데, 형수는 젊고 하니까 앉아서 자꾸 나오며는 몇번을 그렇게 해가지고 다시가고 다시오고 해서 결국에는 죽지않고 겨우 오고..."
1:53
자막: 죄인줄에서 벗어나기위해 안간힘을 쓴 형수 젊은 형수의 기지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세사람
2:02
장홍석: "그때 조카가 형수 뱃속에 들어 있었는데 세사람이 산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자 그대로 다 있고.. "
2:12
자막: 어머니는 끝내 그 죽음의 줄을 벗어나지 못하셨다
2:15
자막: 엄마 등에 업힌 세 살 아이부터 60대 노인까지 그들은 소년에게 올벼쌀을 주거나, 홍시를 건넨사람들
2:25
자막: 영문도 모른채 죄인이 된 22명의 마을 주민이 끌려간 곳은 늘 지나치던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이웃집 마당
2:31
진압군의 총부리는 무고한 22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총성이 멈춘 비극의 현장...
2:40
장홍석: "총성이 다 놓고는 인자 끝났는가 했더니 (총을 맞고 쓰러진)사람한테 기름을 다 뿌리고 전부 화장을 시키는 거예요"
2:45
장홍석: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버린 망자들) 자기 가족인데도 알아볼 수가 없어서요. 몸의 특징. 비녀 랄지 가락지 랄지 몸의 특징들을 봐서 우리 어머니는 비녀를 보고 찾았다고 했어요"
2:58
장홍석: "너무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 군인들 가운데서도 걱정을 많이 하더라 그래요. (진압군조차 두려움에 떨게 한 신전마을의 비극)큰일났다고, 동네 사람 다 죽였다고 자기들끼리..."
3:10
장홍석: "그래놓고는 일부 군인들은 그도 모자라서 집 있는대로 처마에 다 불을 놓고 다녔어요. (온 마을을 불바다로 만든 일부군인들) 그때 우리마을은 전부 안이 빈 터만 남았어요.(마을은 잿더미가 되고 마을사람들은 한순간에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다) 옷가지며 식량이며 모든것을 하룻 저녁에 가족이며 다 잃었어요"
3:34
장홍석: "그게 남아있는 가족들 남아 있는 마을분들이 입이있어도 말을 못하고 혼이 나갔어요"
3:39
자막: 피붙이의 처참한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해야했던 현실
장홍석: "너무나도 기가막히고 끔찍한 일을 당했기때문에 넋이 나갔고, 사람이 혼이나가... 집이 있어 먹을 것이 있을까.. 시체들을 땅에다 묻어야 되는데 헛간까지 불을 태웠으니 그 묻을 삽, 괭이 이런것 마저 없어져서"
4:06
자막: 마을에는 무덤을 팔 삽하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장홍석: "연장을 빌리고 인부를 사고 마을 사람들이 혼이 나가버렸기 때문에 감히"
4:12
자막: 거짓말 같은 현실 앞에 넋이 나간 마을사람들
장홍석: "그 피해를 안 본사람들이라도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래서 이웃마을에 가서 인부를 하고.."
4:23
자막: 집 마당엔 22명의 피가 낭자했고
장홍석: "사람이 하나, 둘 죽는것도 아니고. 하나, 둘 피를 흘린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사람을 태웠으니 그 피비린내, 사람 탄 냄새가"
4:34
자막: 온마을은 죽음의 냄새로 뒤덮였다
장홍석: "어떻게 코에 역겨웠던지 이 마을앞에 코를 들고 다니기가 힘들정도로 그런..."
4:45
장홍석: "(그후 마을에선)하여튼, 빨갱이에 빨자, 순사에 순자만 이런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고..."
4:51
김득중: "(희생된 사람들이)빨갱이 였기때문에 죽인것이 아니라 죽인 다음에 그들에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쳤던 것이죠"
4:58
역사학자, 성공회대교수 한홍구: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순간 우리사회에서 제거해야할 대상이 되는거죠. 그 빨갱이 가족이라고 하면 입 다물고 살았어야 했고 연좌제라든가, 신원조회라든가 그런 게 (그동안 우리사회에서)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까"
5:12
장홍석: "한글도 깨우치지 못하고,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분들이 빨갱이가 뭔지 좌가 뭔지 우가 뭔지 뭘알겠습니까?"
5:18
장홍석: "우리마을은 추석이 그때부터 없어졌습니다. 한 집 건너 제삿집이고, 집집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추석이 되어버렸어요.."
5:31
자막: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갔다
5:35
장홍석: "(신전마을 주민이었던) 홍동호씨는 라는 분인디, 저보다 네살이 위입니다. 위인데 그분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동생이 겨우 3살 먹은 갓 동생이였는데, 4명을 잃어 버리고 혼자 7살에 혼자남았어요"
5:50
자막: 한순간에 고아가 된 소년
장홍석: "거지생활을 했어요. 밥얻어먹다가 조금 크니까 쓰레기 줍는 넝마지기. 청년기 때에는 내가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내가 뭣을 보고 사냐"
6:07
자막: 그것조차도 여의치 않았는 삶
장홍석: "세번을 자살기도 했는데 곧 죽을 순간에 등산객이 구해주고 구해주고 살았어요. 좀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갖은 고생을 다 해서 몸이 망가질때로 망가져서 아파서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자막: 혈혈단신으로 마을을 떠났던 홍동호씨는 지난해 고인이 되셨다
6:25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이영일: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되요. 예를 들어 중동에 취업을 할라는데 안돼. 근데 (월남전) 파병을 지원하니깐 선뜻 받아줘. 그래 유족들이 하는 이야기가 '중동에는 돈벌러 가는데 누가 니를 좋아하겠느냐. 그러니 월남전은 죽으러 갈수도 있는 자리니 그걸 허용해 준 것이다'"
6:49
이영일: "라는 이야기가 이 유족들의 아픔과 애환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유족들 대부분이 못입고, 못배우고, 못먹고 하는 3무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는 비참한 상황들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죠."
7:13
자막: 신전마을 초입에 방치된 여순사건 표지판처럼 점점 잊혀져가는 그날의 기억 하지만 장홍석씨에겐 어머니를 떠올리게하는 단 하나의 흔적이다.
7:19
자막: 점점 잊혀져가는 그 날의 기억. 하지만 장홍석씨에겐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단 하나의 흔적이다
7:30
자막: 억울한 누명으로 비명에 가신 나의 어머니
장홍석: "우선 많이 보고싶었다고 얘기하고 싶고요.. 또 미안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그런가하면 그렇게 억울히 가셨는 데도, 지금 뭐 민주화가 된 이땅에서.."
8:02
장홍석: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정부가 있다고 하는데도 그런 사건을 지금도 외면을 하고"
8:12
자막: 여순사건의 실체가 외면당하는 뼈아픈 현실...
장홍석: "나몰라라 하고 그런 것들을 우리 자식들이 우리 이웃들이"
자막: 자식으로서.. 그아픔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8:20
자막: 어머니... 죄송합니다...
장홍석: "그거 하나 지금까지 해결하지도 못하고 이런 긴긴 세월을 보내는 것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8:40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시든 장미는 흙으로 돌아갔네
부용산 -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 윤선애 노래 / 요절한 여동생을 부용산에 묻은 슬픔을 표현한 시에 곡을 붙임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하여 금지곡으로 취급받은 노래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시든 장미는 흙으로 돌아갔네
제작지원: gs칼텍스, LG화학, LOTTE ADVANCED MATERIALS
기획: 김지홍 / 구성: 이혜련, 정안형 / 카메라: 송정혁, 최재훈, 신대호 / 오디오: 양원석, 임솔빛, 장대은
운전: 김득중, 옥지수 / 음악: 이수환 / 사진: 고 이경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자료협조: 제주MBC
타이틀그래픽: 최윤정 / 행정: 문은호, 신진영, 이가영
연출: 이동신
제작: 여수mbc
여순사건에 대한 의견과 피해사례 제보, 본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소감을 보내주시면 향후 제작에 반영하겠습니다 .여수 mbc홈페이지 시청자의견 게시판 / 여수mbc페이스북으로 많은 참여 바랍니다.
1948.10.19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2부 추석없는 마을 링크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3kzgSGPbvE0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있는 눈물'
0:12
장홍석: "우리마을은 그날이후로 추석명절이 없어졌습니다."
0:22
2부 추석없는 마을
0:32
화면: 전남순천시 낙안면 신전마을 전경
여순사건 당시 2세 장홍석: 1949년도 그때는 농사만 알고 그랬어요. 어니 형제간처럼 아주 오순도순 살기좋은 마을이였어요."
0:40
장홍석: "그러던 차에 여순사건이 발발하고 밤이면 반란군들이 와서(산에서 내려와 집안에) 식량이 있으면 있는대로 다 털어가 버립니다."
0:50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관 김득중: "여순사건은 1948년 10월 19일에 시작되었고, 여수가 10월 27일날 진압군에 의해서 완전히 점령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10월 27일날 여순사건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1:08
김득중: "여순사건은 (발발이듬해인)1949년 내내 지속이 됩니다. 왜냐하면 14연대 군인들이 지리산 등지로 입산 했고 거기서 빨치산 활동을 전개하게 되는 것이고, 이에 따라서 진압군은 토벌작전을 계속 진행하게 됩니다."
1:27
화면: 신전마을 비극의 밤 1949년 추석 이튿날
자막: 빨치산(반군)이 데려온 부상당한 소년을 챙겼다는 이유로 순천 신전마을 주민들은 이자리에서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1:43
장홍석: "저는 그때 3살 먹은는데 형수등에 업혀가지고 죄인 줄로 앉혀는데, 형수는 젊고 하니까 앉아서 자꾸 나오며는 몇번을 그렇게 해가지고 다시가고 다시오고 해서 결국에는 죽지않고 겨우 오고..."
1:53
자막: 죄인줄에서 벗어나기위해 안간힘을 쓴 형수 젊은 형수의 기지로 죽음의 고비를 넘긴 세사람
2:02
장홍석: "그때 조카가 형수 뱃속에 들어 있었는데 세사람이 산겁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자 그대로 다 있고.. "
2:12
자막: 어머니는 끝내 그 죽음의 줄을 벗어나지 못하셨다
2:15
자막: 엄마 등에 업힌 세 살 아이부터 60대 노인까지 그들은 소년에게 올벼쌀을 주거나, 홍시를 건넨사람들
2:25
자막: 영문도 모른채 죄인이 된 22명의 마을 주민이 끌려간 곳은 늘 지나치던 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이웃집 마당
2:31
진압군의 총부리는 무고한 22명의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총성이 멈춘 비극의 현장...
2:40
장홍석: "총성이 다 놓고는 인자 끝났는가 했더니 (총을 맞고 쓰러진)사람한테 기름을 다 뿌리고 전부 화장을 시키는 거예요"
2:45
장홍석: "(형체를 알아볼수 없을 정도로 훼손돼버린 망자들) 자기 가족인데도 알아볼 수가 없어서요. 몸의 특징. 비녀 랄지 가락지 랄지 몸의 특징들을 봐서 우리 어머니는 비녀를 보고 찾았다고 했어요"
2:58
장홍석: "너무나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그 군인들 가운데서도 걱정을 많이 하더라 그래요. (진압군조차 두려움에 떨게 한 신전마을의 비극)큰일났다고, 동네 사람 다 죽였다고 자기들끼리..."
3:10
장홍석: "그래놓고는 일부 군인들은 그도 모자라서 집 있는대로 처마에 다 불을 놓고 다녔어요. (온 마을을 불바다로 만든 일부군인들) 그때 우리마을은 전부 안이 빈 터만 남았어요.(마을은 잿더미가 되고 마을사람들은 한순간에 빈털털이가 되고 말았다) 옷가지며 식량이며 모든것을 하룻 저녁에 가족이며 다 잃었어요"
3:34
장홍석: "그게 남아있는 가족들 남아 있는 마을분들이 입이있어도 말을 못하고 혼이 나갔어요"
3:39
자막: 피붙이의 처참한 죽음을 바로 눈앞에서 목도해야했던 현실
장홍석: "너무나도 기가막히고 끔찍한 일을 당했기때문에 넋이 나갔고, 사람이 혼이나가... 집이 있어 먹을 것이 있을까.. 시체들을 땅에다 묻어야 되는데 헛간까지 불을 태웠으니 그 묻을 삽, 괭이 이런것 마저 없어져서"
4:06
자막: 마을에는 무덤을 팔 삽하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장홍석: "연장을 빌리고 인부를 사고 마을 사람들이 혼이 나가버렸기 때문에 감히"
4:12
자막: 거짓말 같은 현실 앞에 넋이 나간 마을사람들
장홍석: "그 피해를 안 본사람들이라도 할 수 있는게 없어서 그래서 이웃마을에 가서 인부를 하고.."
4:23
자막: 집 마당엔 22명의 피가 낭자했고
장홍석: "사람이 하나, 둘 죽는것도 아니고. 하나, 둘 피를 흘린것도 아니고. 수많은 사람이 피를 흘리고 사람을 태웠으니 그 피비린내, 사람 탄 냄새가"
4:34
자막: 온마을은 죽음의 냄새로 뒤덮였다
장홍석: "어떻게 코에 역겨웠던지 이 마을앞에 코를 들고 다니기가 힘들정도로 그런..."
4:45
장홍석: "(그후 마을에선)하여튼, 빨갱이에 빨자, 순사에 순자만 이런 말만 들어도 몸서리를 치고..."
4:51
김득중: "(희생된 사람들이)빨갱이 였기때문에 죽인것이 아니라 죽인 다음에 그들에게 빨갱이라는 딱지를 붙쳤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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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성공회대교수 한홍구: "빨갱이라는 낙인이 찍힌 순간 우리사회에서 제거해야할 대상이 되는거죠. 그 빨갱이 가족이라고 하면 입 다물고 살았어야 했고 연좌제라든가, 신원조회라든가 그런 게 (그동안 우리사회에서)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까"
5:12
장홍석: "한글도 깨우치지 못하고,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분들이 빨갱이가 뭔지 좌가 뭔지 우가 뭔지 뭘알겠습니까?"
5:18
장홍석: "우리마을은 추석이 그때부터 없어졌습니다. 한 집 건너 제삿집이고, 집집마다 울음소리가 들리는 추석이 되어버렸어요.."
5:31
자막: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마을을 떠나갔다
5:35
장홍석: "(신전마을 주민이었던) 홍동호씨는 라는 분인디, 저보다 네살이 위입니다. 위인데 그분은 아버지, 어머니, 누나, 동생.. 동생이 겨우 3살 먹은 갓 동생이였는데, 4명을 잃어 버리고 혼자 7살에 혼자남았어요"
5:50
자막: 한순간에 고아가 된 소년
장홍석: "거지생활을 했어요. 밥얻어먹다가 조금 크니까 쓰레기 줍는 넝마지기. 청년기 때에는 내가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내가 뭣을 보고 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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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그것조차도 여의치 않았는 삶
장홍석: "세번을 자살기도 했는데 곧 죽을 순간에 등산객이 구해주고 구해주고 살았어요. 좀 남들처럼 살아보려고 갖은 고생을 다 해서 몸이 망가질때로 망가져서 아파서 작년에 돌아가셨습니다."
자막: 혈혈단신으로 마을을 떠났던 홍동호씨는 지난해 고인이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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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지역사회연구소 소장 이영일: "젊은이들이 취업이 안되요. 예를 들어 중동에 취업을 할라는데 안돼. 근데 (월남전) 파병을 지원하니깐 선뜻 받아줘. 그래 유족들이 하는 이야기가 '중동에는 돈벌러 가는데 누가 니를 좋아하겠느냐. 그러니 월남전은 죽으러 갈수도 있는 자리니 그걸 허용해 준 것이다'"
6:49
이영일: "라는 이야기가 이 유족들의 아픔과 애환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유족들 대부분이 못입고, 못배우고, 못먹고 하는 3무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로 전락하는 비참한 상황들에 처해지게 되는 것이죠."
7:13
자막: 신전마을 초입에 방치된 여순사건 표지판처럼 점점 잊혀져가는 그날의 기억 하지만 장홍석씨에겐 어머니를 떠올리게하는 단 하나의 흔적이다.
7:19
자막: 점점 잊혀져가는 그 날의 기억. 하지만 장홍석씨에겐 어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단 하나의 흔적이다
7:30
자막: 억울한 누명으로 비명에 가신 나의 어머니
장홍석: "우선 많이 보고싶었다고 얘기하고 싶고요.. 또 미안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왜그런가하면 그렇게 억울히 가셨는 데도, 지금 뭐 민주화가 된 이땅에서.."
8:02
장홍석: "국민을 위하고 나라를 위하는 정부가 있다고 하는데도 그런 사건을 지금도 외면을 하고"
8:12
자막: 여순사건의 실체가 외면당하는 뼈아픈 현실...
장홍석: "나몰라라 하고 그런 것들을 우리 자식들이 우리 이웃들이"
자막: 자식으로서.. 그아픔을 해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8:20
자막: 어머니... 죄송합니다...
장홍석: "그거 하나 지금까지 해결하지도 못하고 이런 긴긴 세월을 보내는 것이 미안하고 죄송합니다."
8:40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시든 장미는 흙으로 돌아갔네
부용산 - 박기동 작사, 안성현 작곡, 윤선애 노래 / 요절한 여동생을 부용산에 묻은 슬픔을 표현한 시에 곡을 붙임 빨치산이 즐겨 불렀다하여 금지곡으로 취급받은 노래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사이로 회오리바람 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채 시든 장미는 흙으로 돌아갔네
제작지원: gs칼텍스, LG화학, LOTTE ADVANCED MATERIALS
기획: 김지홍 / 구성: 이혜련, 정안형 / 카메라: 송정혁, 최재훈, 신대호 / 오디오: 양원석, 임솔빛, 장대은
운전: 김득중, 옥지수 / 음악: 이수환 / 사진: 고 이경모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 자료협조: 제주MBC
타이틀그래픽: 최윤정 / 행정: 문은호, 신진영, 이가영
연출: 이동신
제작: 여수mbc
여순사건에 대한 의견과 피해사례 제보, 본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소감을 보내주시면 향후 제작에 반영하겠습니다 .여수 mbc홈페이지 시청자의견 게시판 / 여수mbc페이스북으로 많은 참여 바랍니다.
1948.10.19 여순사건 70주기 특별기획 가려진 시간, 고여 있는 눈물 2부 추석없는 마을 링크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3kzgSGPbvE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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