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삼국시대 전라남도 여수시 돌산읍의 지명.
개설
신고구려 장수왕(長壽王)은 평양 천도 후 백제를 쳐서, 개로왕(蓋鹵王)을 살해하고 수도를 빼앗았다. 수도를 점령당한 백제는 왕자 문주를 받들어 공주로 천도하였고, 한강 유역은 고구려에게 빼앗겼다. 그 뒤 성왕이 즉위하여 538년(성왕 16)에 수도를 기름진 평야에 해상 발전을 꾀할 수 있는 금강 유역의 사비(지금의 부여)로 옮겼다. 안으로는 불교를 장려해 국가의 정신적 통일을 기하고, 밖으로는 중국·일본과 화친을 맺어 국가 발전을 꾀하였다.
제정경위 및 목적
백제는 수도를 사비성으로 옮긴 후 전국을 사비를 중심으로, 중방·동방·남방·서방·북방의 오방(五方)제로 나누어 다스렸다. 중방은 고사성(古沙城: 전라북도 고부), 동방은 득안성(得安城: 충청남도 은진 부근), 남방은 구지하성(久地下城: 전라남도 장성), 서방은 도선성(刀先城: 미상), 북방은 웅진성(熊津城: 충청남도 공주)이었다.
남방 구지하성의 치소는 지금의 전라남도 장성군 지방으로 추정하지만,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이라는 설도 있다. 전라남도 여수 지방은 남방인 구지하성 관할의 삽평군(歃平郡 또는 沙平郡)의 영현인 원촌현(猿村縣: 여수의 육지)과 돌산현(突山縣:여수의 도서)으로 나뉘게 되었다.
변천
삼국시대 돌산현으로 구분되었던 전라남도 여수 지역은 남북국시대에는 여산현으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고려시대에는 다시 돌산현으로, 조선시대에는 폐현이 되었다가, 1896년(고종 33)에 돌산군이 되었다. 1914년 돌산군이 폐지되어 여수군에 편입되었고, 1949년 여수군이 시로 승격되자 여천군 지역에 통합되었다. 1980년에는 여천군 돌산면이 돌산읍으로 승격되었고, 1998년 4월 여천군, 여천시, 여수시가 통합되면서 여수시 돌산읍이 되었다.
참고문헌
- 여수지역사회연구소, [돌산읍지] (돌산읍지편찬위원회, 2000)